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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유산

서울의 관문이었던​, 구 서울역사(驛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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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의 모습

 

​▲ 일제 강점기 때의 모습 | 이때는 '경성역'이라고 불렸다.

 

 

숭례문 근처에 있는 서울시 중구 봉래동2, 숭례문 인근에 있는 옛 서울역 건물은 숭례문과 함께 오랫동안 서울의 상징과 같은 존재였다.

 

 

청운의 꿈을 안고 기차에 몸을 실어 처음으로 서울에 도착한 지방 사람들은 서울역 광장으로 나와 길 건너편의 거대한 대우빌딩(현 서울스퀘어 빌딩)을 바라보며 비로소 서울에 도착했음을 실감하곤 하였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서울역 광장은 노숙자들이 모이는 대표적인 장소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서울 시민들에게 서울역의 이미지는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 광장에서 바라본 모습

 

▲ 중앙의 출입문 부분

 

▲ 출입문 우측 부분

 

 

 

하지만 2004년에 고속철도(KTX)가 개통되면서 새롭게 서울역사(驛舍)가 들어서고 주변에 여러 개의 복합쇼핑몰이 생기면서 서울역 광장 주변의 모습도 크게 변했다. 수십 년 동안 서울의 관문 역할을 했던 서울역 건물도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현재는 문화역서울 284’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태어나 문화예술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구 서울역 건물은 우리나라 근현대사는 물론 우리나라 철도의 역사(歷史)와도 맞닿아 있다. 1900년 서울과 인천을 연결하는 경인철도가 개통함으로써 남대문역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하였던 것이다. 이때는 아주 작은 목조건물이었다고 한다.

 

 

​▲ 광장 북쪽으로 강우규 의사 동상이 서 있다. 그는 1919년 서울역에서 조선 총독인 사이토 마코토에게 폭탄을 던진 독립운동가이다.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에 들어서자 점점 늘어나는 물류량과 이동 인구 때문에 좀 더 크고 새로운 역 건물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1922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925년에 현재의 위치에 새롭게 건물을 완성하였는데 바로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구 서울역사(驛舍)’이다. 당시의 이름은 서울역이 아닌 '경성역'이었다.

 

 

그 후 이 건물은 2004년까지 무려 8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서울과 지방을 잇는 교통과 물류의 중심 역할을 맡았다.

 

 

 

 

 

 

건물은 지상 2, 지하 1층으로 지어졌다. 건물 양식은 서유럽에서 18세기 이후로 유행했던 르네상스풍의 고전주의 양식을 따랐는데, 설계자는 일본인 쓰카모토 야스시(당시 동경대 교수)였다.

 

 

멀리서 보면 마치 서양의 궁궐처럼 화려한 느낌을 주는 건물의 외관은 붉은색 벽돌과 어우러진 화강석으로 되어 있어 석조 건물 특유의 웅장함과 우아함을 갖고 있다.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중앙부 지붕에 있는 청록색의 둥근 돔이다.

이러한 돔은 비잔틴 양식에서 흔히 볼 수 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본래는 기차역이었지만 오늘날 세계적인 미술관으로 활용되고 있는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이 언뜻 떠오르기도 한다. 안내 표지판에 따르면 스위스의 루체른역사를 모델로 하였다고 한다.

 

옛날 루체른역사

 

​​▲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 | 원래 기차역 건물이었다가 지금은 미술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역사 내부로 들어가 보면 그 화려함이 외관 못지않다. 현재 내부는 주로 전시회나 각종 이벤트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는데, 여러 개의 창을 통해 은은하게 들어오는 햇빛을 받으며 바닥에는 매끈한 화강암이 깔려 있고, 가지각색의 천장과 창틀의 모양도 보는 이의 시선을 끈다.

 

 

본래 1층의 중앙홀을 중심으로 좌우에 대합실이 있었고, 2층에는 서양식 레스토랑과 역무원의 사무공간이 있었다고 한다.

 

 

 

▲ 1층 중앙홀 내부 모습

 

 

 

아마도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근대 건축물 중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이 건물은 현재 사적 제284호에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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