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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미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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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그린, 얀 베르메르 ▲ 얀 베르메르(1632~1675) 얀 베르메르는 렘브란트와 함께 17세기를 대표하는 네덜란드의 화가이다. 그는 생전과 후대에 얀 베르메르(Jan Vermeer), 베르메르 판 델프트(Vermeer van Delft),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 등의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베르메르는 다른 유명한 화가들에 비해 남아 있는 작품 수가 매우 적고, 생애에 대해서도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화가이다. 위작이 아니라 확실하게 그의 작품으로 밝혀진 그림은 32점에 불과하다. 베르메르는 생전에는 그다지 인정받지 못한 화가였다. 그러나 사후인 19세기에 들어서 프랑스에서 사실주의가 유행하면서 베르메르를 비롯한 17세기 네덜란드 화가들의 작품이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일상을 담담하게 사실적으로 표현..
얼굴이 긴 여인의 초상화를 그린, 모딜리아니 ▲ 아메데오 모딜리아니(1884~1920) 열정의 보헤미안, 고독한 영혼을 표현한 화가, 가난하지만 자유로운 영혼의 화가, 모가지가 길어 슬픈 에콜 드 파리의 위대한 화가, 몽파르나스의 전설 ……. 이렇게 모딜리아니의 작품과 일생을 다룬 다양한 책과 영화, 뮤지컬 등의 제목만 쭉 살펴보아도 그가 어떤 화가였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에콜 드 파리(École de Paris)는 ‘파리의 학교’란 뜻으로, 주로 제1차 세계 대전 후부터 제2차 세계 대전까지 파리의 몽파르나스나 몽마르트르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여러 외국인 화가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다른 말로는 ‘파리파’라고도 부른다. 이들은 국적을 떠나 미술의 중심지였던 파리에 모여 작품 활동을 했는데, 대표적으로 모딜리아니(이탈리아), 수틴(리투아니..
신인상주의(점묘법) 화가, 폴 시냐크 ▲ 폴 시냐크(1863~1935) 신인상주의(Néo-Impressionsme)란 19세기 말에 크게 유행했던 인상주의에서 벗어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기법을 사용한 그림이란 뜻에서 붙여진 말이다. 다른 포스팅에서 ‘점묘법의 화가’ 조르주 쇠라(1859~1891)를 소개한 적이 있는데 바로 이 쇠라가 신인상주의를 탄생시킨 화가이다. 쉽게 말하면 신인상주의 화가들은 점묘법을 사용한 화가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폴 시냐크(Paul Signac, 1863~1935)는 쇠라와 함께 신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이다. 그는 쇠라와 마찬가지로 점묘법을 사용했으며 ‘분할’이라는 개념을 회화에 적용하였다. 쇠라보다 4살 어린 그는 당시 미술의 중심지였던 프랑스 파리의 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점묘법을 탄생시킨 쇠라..
에스파냐(스페인)를 대표하는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 ▲ 아마도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Goya, 1746~1828)는 이란 작품으로 유명한 벨라스케스(1599~1660)와 함께 에스파냐(스페인)의 화가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일 것이다. 그는 다양한 주제의 그림을 남겼는데 특히 인물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와 역사적 사건을 주제로 한 역사화로 유명하다. 평생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친 그는 7백 여점에 이르는 그림을 비롯하여 수백 점의 판화도 남겼다. 1746년 에스파냐의 한 작은 시골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그림을 배우며 화가로서의 재능을 닦았다. 고야는 24살 때인 1770년 이탈리아로 건너가 로마에 오랫동안 머물렀다. 그는 로마에서 고대 로마 시대와 르네상스 시대 거장들의 작품들을 보면서 영향을 받았고, 몇 년 후 다시 에스파냐로 돌..
원근법을 최초로 사용한 화가, 마사초 ▲ 마사초(1401~1428) 마사초(Masaccio)는 르네상스 회화 양식의 창시자이자, 회화에서 원근법을 사용한 최초의 화가로 알려져 있다. ​본명은 ‘토마소 디 조반니 디 시몬느 구이디(Tommaso di Giovanni di Simone Guidi)’로 줄여서 '구이디'라고 부른다. 1401년 이탈리아의 토스카나 지방의 카스텔 산 조반니에서 태어나 불과 27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로마에서 세상을 떠난 그는 미술의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마사초의 삶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그가 남긴 작품들을 통해 조각의 도나텔로(1386~1466), 건축의 브루넬레스키(1377~1446)처럼 회화에서 르네상스 양식을 창시한 화가로 평가받는다. 그 까닭은 마사초의 작품이 그 이전의 회화들..
인상파를 이끈 풍경화의 대가, 카미유 피사로 ▲ 1900년의 카미유 피사로(1830~1903) ▲ (1903년) 서양 미술의 역사에서 19세기는 ‘황금의 시대’로 꼽힌다. 이 시기에는 오늘날까지 미술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수많은 위대한 화가가 탄생하였는데, 특히 이 시기를 가장 풍성하게 만드는 데 공헌을 한 것은 ‘인상파’ 또는 ‘인상주의’라고 불리는 미술사의 거대한 흐름이었다. ​ 19세기 중반에 인상파가 탄생하기 전까지 미술, 특히 회화라고 하는 것은 오늘날의 사진과 비슷한 역할을 맡았다. 쉽게 말해 그때까지 회화의 가장 큰 역할은 단순히 ‘사물을 정확하게 그리는 것’이었다. 1860년부터 프랑스의 파리를 중심으로 시작된 인상파라는 새로운 미술의 흐름은 이런 회화의 단순한 정의를 벗어나 화가의 주관적인 느낌, 즉 ‘인상(Impression)’..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조각가, 도나텔로 ▲ 도나텔로(1386~1466) ‘조각가’, ‘르네상스’ 이 두 단어를 연관 지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미켈란젤로이다. 미켈란젤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더불어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천재 예술가로, 회화는 물론 조각, 건축 등 다양한 방면에서 천재적인 재능을 보였다. 조각의 역사에서 미켈란젤로는 수백 년 동안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거대한 산과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미켈란젤로와 함께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조각가를 꼽을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그가 바로 도나텔로이다. 도나텔로는 르네상스의 초창기에 활동한 조각가이다. 본명은 ‘도나토 디 니콜로 디 베토바르디(Donato di Niccolo di Betto Bardi)’라는 아주 긴 이름인데, 줄여서 도나텔로라고 부른다. 1386년 르네상스..
황금빛 여인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 ​ ▲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 ​ ▲ (1907년) 클림트는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반인들에게 그리 친숙한 화가는 아니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비교적 잘 알려진 화가가 되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몇 해 전에 그의 대표작인 이 유명한 두통약의 포장지에 실려 대대적으로 광고를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매우 신비스러우면서도 꿈을 꾸는 듯 몽환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그의 작품들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화려함’ 그 자체이다. 그의 작품 속에는 신화 속 인물이 자주 등장하며, 꿈과 상상의 세계, 생명과 죽음, 여인과 사랑 등의 추상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 아마도 오스트리아의 화가로서는 가장 유명한 클림트는 1862년 오스트리아의 수도인 빈 근처에 있는 바움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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