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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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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왕 때 세운 신라의 성곽, 단양 적성과 단양 신라 적성비 ▲ 단양 적성 | 사적 제265호 충청북도 단양군 단성면 하방리에는 신라 시대에 만든 유명한 석비가 하나 있다. 오늘날 단양을 대표하는 문화재라고 할 수 있는 ‘단양 신라 적성비’이다. 단양 신라 적성비는 단양에서 춘천 방향으로 향하는 고속도로 휴게소인 단양 휴게소 바로 뒤에 있는 산 중턱에 있다. 우선 이 비석이 세워져 있는 사적 제265호 단양 적성(丹陽 赤城)에 대해서 알아보자. 단양 적성은 신라 진흥왕 때인 545년부터 551년 사이에 세워진 산성이다. 성곽의 둘레는 약 1킬로미터이지만 대부분 무너져 일부만 남아 있었는데 오늘날에는 복원을 거쳐 옛 모습을 거의 찾은 상태이다. 성곽은 안쪽과 바깥쪽, 두 겹으로 되어 있는데 삼국 시대의 산성으로는 비교적 규모가 큰 성곽이다. 예로부터 단양은 굽이쳐 ..
삼국 시대의 산성 터, 서울 양천고성지 ​▲ 서울 양천고성지 | 사적 제372호 ​ 서울 지하철 9호선 양천향교역 근처에는 서울시 안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향교인 양천향교가 있다. 양천향교란 이름 때문에 행정구역상 서울시 양천구에 속해 있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 이곳은 서울시 강서구에 속해 있다. 조선 시대에는 현재 서울특별시의 서쪽, 그중에서도 한강 아래에 있는 강서구와 양천구 일대는 경기도 ‘양천현(陽川縣)’에 속했다. 현(縣)은 조선 시대 행정구역의 단위인 '부목군현(府牧郡縣)' 중 가장 아래에 속한다. 이 지역은 1963년에 서울시 영등포구에 편입되었고, 1988년에 강서구와 양천구로 분리되었다. 다시 말해 지금의 강서구와 양천구가 모두 조선 시대에는 양천현이었다. ​ ▲ 양천향교 | 현재 서울에 남아 있는 유일한 향교로, 양천고성지가 ..
천마도가 발견된 신라의 고분, 천마총 ▲ 경주시 황남리 고분군(古墳群)에 속하는 천마총(제155호 고분) 신라의 천년 고도 경주,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는 이곳에서도 가장 문화재가 밀접되어 있는 곳은 황남동 근처이다. 경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멀지 않은 곳에 대릉원의 고분들이 여기저기 솟아 있고, 남쪽으로 계속 이동하다 보면 첨성대와 월성, 국립경주박물관까지 볼 수 있다. 또한 ‘안압지’로 더 잘 알려져 있는 경주 동궁과 월지, 황룡사지, 분황사까지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경주시 황남동에 있는 대릉원은 신라 시대의 왕과 왕비, 왕족들의 무덤이 모여 있는 약 12만 평 넓이의 무덤군(群)이다. 이곳에는 지금까지 발견된 무덤만 해도 23개나 있는데, 에 ‘미추왕(신라 제13대 왕, 재위 기간 262년∼284년)을 대릉에..
여주를 대표하는 유서 깊은 사찰, 여주 신륵사 ▲ 여주 신륵사 | 신라 때 창건되어 고려 우왕 때 나옹 선사가 돌아가신 곳으로 유명하며 조선 시대에는 세종대왕의 무덤인 영릉이 여주로 이장되면서 원찰이 되어 '보은사'라고 불리기도 했다. 서울에서 동쪽으로 이동하여 북한강과 남한강이 갈라지는 양평을 지나 남한강을 따라 가다 보면 경기도 여주시가 나온다. 서울에서 비교적 멀지 않은 이 고장은 ‘여강(驪江)이 흐르는 고장’이라고 하여 여주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여강은 남한강의 옛 이름이다. 옛날부터 경기도 여주는 넓고 비옥한 땅에서 나는 질 좋은 쌀로 유명한 고장이다. 뿐만 아니라 흙이 기름지고 찰기가 있어서 궁궐에서 사용하는 그릇도 이곳에서 많이 만들어졌다. 이런 연유로 오늘날에는 도자기가 유명한 고장이기도 하다. ▲ 남한강변에 인접해 있는 정자 강월헌 ..
나라의 급한 소식을 주고받던, 목멱산 봉수대 터 ▲ 목멱산 봉수대 터 |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14호 봉화(烽火)를 영어로는 ‘Signal Fire’라고 한다. 불로 보내는 신호라는 뜻인데, 교통이나 통신이 발달하지 못했던 옛날에는 이렇게 불을 피워서 신호를 보내곤 하였다. 특히 나라에 큰 변란이 있거나 외적이 쳐들어왔을 때 먼 곳에 빠르게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는 봉화와 파발이 필수적이었다. 특히 봉화는 나라의 국경이나 변방의 급한 소식을 한양 도성으로 빨리 전달하고, 상황이 발생한 지역의 백성들에게도 소식을 알리는 역할을 하는 통신 수단이었다. 아무래도 말을 타고 문서를 직접 전하는 파발보다는 봉화가 빠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봉화를 전하기 위해서 세운 시설을 ‘봉수대’라고 한다. 봉수대는 멀리서도 불과 연기가 잘 보이도록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대부..
고려 시대의 석탑, 개성 남계원지 칠층석탑 ▲ 개성 남계원지 칠층석탑 | 국보 제100호 서울시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야외 전시장에 우뚝 솟아 있는 남계원지 칠층석탑은 고려 시대에 만든 석탑으로, 국보 제100호에 지정되어 있다. 탑의 높이만 해도 약 7.5미터에 이르며 위풍당당함을 지닌 이 탑은 본래 지금의 북한 지역인 경기도 개성시 덕암동에 있던 ‘남계원’이라는 사찰 터에 세워져 있던 탑이다. 본래 개성의 남계원 터에 있던 탑이므로 '개성 남계원지 칠층석탑'이라고 부른다. ​이 탑은 그 이름처럼 7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세워진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고려 시대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통일 신라 시대의 석탑 양식도 일부 지니고 있으나 전반적인 탑의 양식은 전형적인 고려 시대의 것이며, 일제강점기인 1915년에 남계원 터에서 경복궁으로..
조선 시대의 석비, 금암기적비 ▲ 금암기적비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8호 금암기적비(黔巖紀蹟碑)는 조선 시대인 1781년(정조 5년)에 세운 비석이다. 이 비석을 세운 사람은 22대 임금인 정조이다. 그는 19대 왕 숙종의 묘인 명릉을 참배하고 궁궐로 돌아오는 길에 이곳에서 할아버지인 영조에 관한 일을 떠올리며 이 비석을 세우도록 하였다. 숙종은 영조의 아버지이므로 정조에게는 증조할아버지이다. 숙종의 묘인 명릉은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서오릉 안에 있다. ​이 비석이 세워진 위치에서 서쪽으로 약 6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비석의 이름인 ‘금암기적비’에서 ‘금암’은 ‘검암(黔巖)’에서 비롯된 말이다. 검암은 '검은 바위'란 뜻인데, 지금의 서울시 은평구 진관동에 옛날에 검은색의 커다란 바위가 있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조선 시대..
조선 말기의 전통 가옥, 서울 번동 창녕위궁재사 ▲ 서울 번동 창녕위궁재사 | 등록문화재 제40호 서울시 강북구에는 ‘북서울 꿈의 숲’이라는 이름의 대형 녹지 공원이 있다. 옛날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는 이곳에 '​드림랜드'라는 강북 지역 최대의 놀이 시설이 있었다. 그런데 재정난 탓인지 관리와 시설 투자가 계속 이어지지 않고 있다가 서울시에서 지난 2009년에 오늘날과 같이 '북서울 꿈의 숲'이란 이름의 공원으로 만들어 놓았다. ​이 공원은 현재 서울에서 네 번째로 큰 공원이라고 하는데, 공원 안에는 조선 시대에 지어진 전통 가옥이 있어서 눈길을 끈다. ​바로 등록문화재 제40호로 지정된 ‘서울 번동 창녕위궁재사’이다. 이 집은 조선 제23대 임금 순조의 둘째 딸인 복온공주(1818~1832)와 부마 창녕위 김병주(1819~1853)를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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