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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유산

고려 시대의 석탑,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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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국보 제101호)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은 고려 시대의 탑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본래는 법천사라는 절에 세워져 있던 탑이다. 법천사는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에 있던 절로,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이 탑은 지광국사(智光國師, 984~1067)의 사리를 담아 지광국사를 추모하기 위해 만든 탑인데, 지광국사는 고려 성종 때부터 문종에 이르기까지 다섯 왕을 거치는 동안 고려 왕실로부터 높은 추앙을 받았던 고승이다.

 

특히 고려 11대 왕 문종(재위 1046~1083)은 지광국사를 왕사(王師)로 삼았다가 훗날 국사(國師)로 추대하기도 하였다.

 

 

 

본래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난 지광국사는 말년에 자신이 처음으로 출가했던 원주의 법천사에 머물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러자 문종은 지광(智光)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탑을 만들어 현묘(玄妙)라는 이름을 붙이도록 하였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의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이다.

 

 

 

 

 

탑의 전체 높이는 6.1미터로 상당히 큰 편이며 화강암으로 만들었다.

기단부(탑의 받침대에 해당되는 부분)는 여러 단으로 되어 있고, 꽃과 신선 등이 새겨져 있다. 탑의 몸체와 지붕, 꼭대기에도 보살상, 봉황, 연꽃, 덩굴무늬 등 다양한 조각이 빈틈없이 조각되어 있다.

 

 

이 탑은 고려 시대의 여러 탑 중에서도 탑에 새겨진 조각과 장식이 매우 이국적이며 화려한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탑이 세워진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지광국사가 세상을 떠난 것이 1085년이므로 그 무렵에 세워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탑을 세우면서 비석도 함께 세웠는데, ‘법천사지 지광국사탑비(국보 제59)’라고 이름 붙여진 이 비석은 법천사 터에 따로 남아 있다.

 

 

 

 

 

▲ 탑신부의 조각

 

 

 

본래 강원도 원주시 법천사에 있던 이 탑이 국립고궁박물관 앞에 있는 까닭은 다음과 같다.

이 탑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갖은 고초를 겪었다. 기록에 따르면 국권 피탈 직후인 1911년 와다 쓰네이치라는 일본 사람이 탑을 사서 서울의 명동성당 근처로 옮겼다. 조경용으로 쓰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와다 쓰네이치는 이 탑을 다시 일본 오사카의 한 귀족에게 팔아 일본으로 무단 반출하였다. 조선 총독부가 이를 문제 삼자 그는 다시 탑을 돌려받아 조선 총독부에 기증했고, 1915년 마침 경복궁에서 전시회가 열리자 장식용으로 쓰기 위해 경복궁으로 옮겨졌다.

 

 

6.25 전쟁 때에는 폭격을 맞아 탑의 상단부가 산산조각 나기도 했다. 1957년에는 복원 공사를, 1981년에는 전면 해체 공사를 하여 오늘날과 같이 제 모습을 찾았다.

 

2005년에 서울시 용산구에 새롭게 국립 중앙 박물관이 들어서면서 경복궁 안에 있던 다른 탑들은 모두 용산구 국립 중앙 박물관으로 옮겨졌으나 이 탑은 파손의 위험이 있어 오늘날의 위치에 그대로 남게 되었다.

 

국보 제101호에 지정된 지광국사 현묘탑은 조만간 원래의 위치인 원주시 법천사 터로 옮겨질 계획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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