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우장(尋牛莊) |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7호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은 이름 그대로 ‘성의 북쪽에 있는 동네’이다. 혜화문으로부터 낙산을 거쳐 숙정문(북대문)까지 이어진 한양 도성의 성벽을 경계로 하여 북쪽에 있는 이 동네는 또한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라는 유명한 시의 배경이 되는 동네이기도 하다.
▲ 심우장으로 올라가는 골목 아래에 사진과 같은 쉼터가 있다.
▲ 한용선 선생의 동상과 그의 시 '님의 침묵'이 새겨진 돌이 있다.
성벽 아래로 오래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성북동 222번지, 마치 거미줄처럼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을 따라 올라가면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만해 한용운이 살았던 집이 있다. 그 집이 바로 심우장이다.
승려이자 시인인 만해 한용운 선생(1879~1944)은 ‘님의 침묵’이란 시로도 유명하지만 3.1 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끈 민족 대표 33인 중 한 명인 독립운동가이기도 하다.
3.1 운동의 주모자로서 온갖 탄압과 회유를 거부하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3년 동안 수감되기도 했던 한용운 선생은 죽는 순간까지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여러 민족운동에 참여하였고, 불교의 대중화와 민중계몽을 위해서도 힘썼다.
▲ 심우장으로 올라가는 골목
▲ 심우장 입구
한용운 선생은 1933년에 벽산(碧山) 스님이 기증한 현재의 성북동 집터에 심우장(尋牛莊)이란 집을 짓고 여생을 보냈다. 보통은 집을 지을 때 햇빛을 잘 받을 수 있는 남향(또는 동향)으로 짓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나 선생은 조선 총독부 청사가 보기 싫다고 하여 끝내 북향으로 집을 지었다고 한다. 결국 심우장은 조선 총독부를 등지고 북향으로 지은 집이 되었다.
선생은 그토록 바라던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1944년에 심우장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선생의 마지막을 함께한 심우장은 정면 4칸, 측면 1칸의 소박한 규모로 가운데 2칸에는 툇마루와 안방이 있고, 왼쪽 끝에 사랑방, 오른쪽 끝에는 부엌이 있는 작은 기와집이다.
▲ 심우장 | 정면 4칸, 측면 1칸의 작은 집이다.
선생이 서재로 쓰던 사랑방 위에는 ‘심우장(尋牛莊)’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불교에서 말하기를 깨우침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것에 빗대어 ‘자신의 본성을 찾는다’는 뜻의 ‘심우(尋牛)’란 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 서재
▲ 부엌
▲ 안방
▲ 툇마루
현재 심우장 안에는 선생의 글씨와 서책, 옥중 공판기록 등이 남아 있다.
비록 작고 볼품없는 집이지만 일생토록 독립에 대한 믿음과 열망을 버리지 않고 자신의 안위보다 민족의 안위를 중요시한 선생의 숭고한 뜻이 살아 있는 뜻깊은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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