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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유산

조선왕조의 사당, 종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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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왕실의 사당

 

▲ 정전 | 종묘의 중심 건물이다.

 

 

 

유교를 국가의 통치 이념으로 삼아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고 나서 곧바로 궁궐(경복궁)과 함께 종묘, 사직을 세울 것을 명하였다. 

우리가 흔히 사극 드라마를 보면 '종묘사직'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는데 여기서 종묘란 왕실의 사당을 말하며, 사직은 토지와 곡식의 신에게 풍년을 빌며 제사를 지내던 제단인 사직단을 말한다. 

유교 사회에서는 왕이 나라를 세우고 도읍을 정하면 궁궐의 왼쪽에 종묘를 세우고, 오른쪽에 사직을 세우는 것이 법도였다. 그래서 흔히 ‘종묘사직’이라고 하면 왕실 또는 국가 그 자체를 가리킬 정도로 종묘와 사직은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특히 종묘는 역대 조선왕조의 임금과 왕비의 신주(神主: 죽은 사람의 위패)를 모신 왕실의 사당이다. 왕과 왕비가 죽으면 몸은 능에 묻히고, 혼은 이곳 종묘에 모셔진 것이다.

 

 

▲ 영녕전 

 

 

 

2. 종묘의 역사, 의의

 

앞서 말했듯이 종묘는 조선왕조 역대 왕과 왕비, 그리고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왕실의 사당이다. 1394년(태조 3년) 조선왕조가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그해에 짓기 시작하여 이듬해에 완공되었으며 곧바로 개경으로부터 태조의 4대조인 목조, 익조, 도조, 환조의 신주를 모셨다. 

정전은 처음에는 태실 7칸, 좌우에 방이 딸린 2칸이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에 불타버려 광해군 때인 1608년에 다시 지었고, 그후 영조와 헌종 때 증축하였다. 

영녕전은 1421년(세종 3년)에 처음 지었고 당시에는 총 6칸의 규모였으나 임진왜란 때에 불타버려 광해군 때 다시 10칸으로 지었다. 그후에 계속 증축하여 현재와 같은 16칸이 되었다. 

종묘의 중심건물인 정전은 좌우길이가 100미터에 이르는 단일 목조 건축물로서는 세계 최대 규모이다.

 

이러한 종묘 제도는 중국의 주나라 때에 시작되었으나 중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우리만의 독특한 건축양식을 지니고 있다. 또한 종묘에서 제례를 지낼 때 거행되는 '종묘제례악'은 그 절차나 음악, 무용 등 우리나라만의 절차를 지니고 있으며, 1462년에 정형화되어 거의 500년 넘게 원형 그대로 이어져온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제례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다른 문화재들과 마찬가지로 종묘 역시 일제강점기에 큰 수난을 겪었다. 종묘는 원래 동궐이라고 불리던 창덕궁과 창경궁을 담 하나만 사이에 두고 연결되어 있었는데, 일제는 교통을 원활하게 만든다는 명목으로 창경궁과 종묘 사이를 가로지르는 도로를 만들었다(오늘날의 율곡로). 왕조의 기운을 끊기 위해서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현재는 율곡로를 지하화하고 종묘와 창경궁을 연결하는 복원 공사가 완료되었다. 

 

이러한 여러 가치를 지니고 있는 종묘는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을 뿐 아니라 국보인 정전, 보물인 영녕전, 국가무형문화재인 종묘제례악을 지닌 공간으로서 1995년 12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세계적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은 바 있다.  

 

 

 

▲ 신로(神路)와 어로(御路), 세자로(世子路) | 가운데 약간 높은 길이 혼령이 다니는 신로, 오른쪽은 왕이 다니는 어로, 왼쪽은 왕세자가 다니는 세자로이다. 

 

 향대청 | 향대청은 제례를 주관하는 제관들이 대기하는 곳이다.

 

 

 

3. 종묘의 중심, 정전과 영녕전

 

종묘의 중심 건물은 정전 영녕전이다. 국보에 지정되어 있는 정전은 가로 길이만 무려 100미터가 넘는 건물로 그 규모만으로도 보는 이를 압도한다. 본래 7칸의 건물이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왕이 승하할 때마다 위패를 모실 칸이 계속하여 필요했기 때문에 점점 더 늘어나서 현재와 같이 19칸의 거대한 규모가 되었다.

영녕전은 태조 이성계의 4대조와 그 비를 모신 건물로, 건물의 규모는 정전보다 작다. 세종 때에 신주를 모실 공간이 모자라 태조의 4대조가 이곳으로 옮겨졌고, 추존(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죽은 이에게 임금의 칭호를 주던 일)된 왕과 왕비의 신주도 모셔져 있다.

정전과 영녕전뿐만 아니라 종묘에는 다양한 건축물들이 있다. 종묘의 건축물들은 흔히 조선 시대의 다른 궁궐이나 사찰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장식은 없지만 단순하면서도 장엄한 건축 양식을 자랑한다. 그래서 서양의 학자들로부터 ‘동양의 파르테논 신전’이라고 불릴 정도로 가치와 아름다움을 널리 인정받고 있다. 

 

 

▲ 전사청 | 제례를 치를 때 음식을 마련하는 곳이다.

 

 

▲ 공민왕 신당 | 고려 제31대 왕인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초상화를 모신 사당이다. 조선왕조의 최고 사당인 종묘 안에 공민왕의 사당이 있는 까닭은 정확히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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