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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유산

세계문화유산에 빛나는 조선의 궁궐, 창덕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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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의 역대 왕들이 가장 오래 머무른 궁궐

▲ 돈화문 | 창덕궁의 정문이다.

 

 

 

조선 왕조를 창업한 태조 이성계는 도읍을 한양으로 정하고 으뜸 궁궐(법궁)인 경복궁을 지었다. 그리고 제3대 왕인 태종은 경복궁 외에 또 하나의 궁궐을 짓도록 명령하였다. 그리하여 완성된 것이 바로 창덕궁이다.

 

태종 이방원에게 경복궁은 어떤 곳일까? 왕위에 오르기 전 1차, 2차 왕자의 난으로 피바람을 일으키며 정적들과 형제들을 무참히 죽였던 궁궐이 아닌가? 게다가 이방원에게 최대 정적이었던 바로 그 정도전이 설계한 궁궐이기도 하였다. 태종에게 그런 경복궁에 머무르는 것은 정말 불편한 일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런 연유로 창덕궁을 짓지 않았을까?  

그렇게 하여 1405년(태종 6년) 창덕궁이 완성되었다. 비록 두 번째로 지어진 궁궐이지만, 조선 시대에 임금들이 가장 오랫동안 머무르며 정사를 보았던 곳은 바로 창덕궁이다.

그 까닭은 임진왜란 때에 경복궁을 비롯한 궁궐들이 모두 불에 타 소실되었는데, 광해군에 이르러 가장 먼저 다시 지은 궁궐이 바로 창덕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창덕궁은 오랫동안 경복궁을 대신하여 사실상 조선왕조의 법궁으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 동궐도 | '동궐'이란 도성의 동쪽에 자리잡은 궁궐이란 뜻으로 오늘날의 창덕궁과 창경궁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동궐도는 1824~1828년 무렵에 도화서 화원들이 그린 그림으로 오늘날의 창덕궁과 창경궁을 담고 있는데, 전각의 위치와 모양 등 세세한 부분까지 잘 나타나 있다. 

 

 

 

2. 이궁으로 지어진 창덕궁

 

동궐이란 조선 시대에 창덕궁과 창경궁을 아울러 부르던 말이다. 도성의 동쪽에 있는 궁궐이란 뜻인데, 조선왕조의 정궁인 경복궁을 북궐, 서쪽에 있는 경희궁을 서궐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엄밀히 말해 조선왕조의 법궁(法宮)은 경복궁이며, 창덕궁은 이궁(離宮)이다. 법궁이란 왕조의 공식적인 대표 궁궐이자 첫 번째 궁궐을 뜻하며, 이궁은 다른 말로 별궁 또는 행궁이라고도 한다. 법궁 외에 임금이 필요에 따라 머무르거나 잠시 지방을 방문할 때에 머무르는 궁궐을 포함하여 말한다.

 

창덕궁의 가장 큰 특징은 다른 궁궐과는 달리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도록 건물들을 지었다는 점이다. 산자락을 따라 지형을 크게 해치지 않도록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이것이 1997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경복궁과 창덕궁을 모두 방문해 보았다면 이러한 차이점을 극명하게 느낄 수 있다. 경복궁을 보면 정문인 광화문부터 시작하여 주요 건물이 일직선과 좌우 대칭으로 놓여져 있다. 왕조의 법궁다운 정형적인 조형미가 돋보인다. 그에 비해 창덕궁의 전각들은 산자락을 따라 마치 골짜기에 안기도록 주요 전각들이 세워져 있다. 특히 창덕궁 후원에는 다양한 연못과 정자, 아름다운 수목, 괴석 등이 어우러져 자연환경이 그대로 살아 있는 듯한 궁궐의 모습이다.  

국보이자 창덕궁의 중심 건물인 인정전은 조선 시대 궁궐의 전형적인 양식을 잘 보여주는 웅장한 건물이다. 임진왜란 이후에 있었던 왕의 즉위식, 세자의 책봉식, 외국 사신의 접견과 같은 나라의 큰 행사가 대부분 이곳에서 치러졌다.​ 

 

 

 

 인정전 | 창덕궁의 정전(궁궐의 중심 건물)으로 '어진 정치를 펴는 곳'이라는 뜻이다. 경복궁 근정전 못지않은 커다란 규모를 자랑한다. 

 

 선정전 | 창덕궁의 편전(평상시 임금이 신하들과 국사를 의논하는 곳)으로 현존하는 궁궐의 전각 중에서 유일하게 청기와를 사용한 점이 특징이다.

 

 숙장문 | 창덕궁의 중문(中門)으로 돈화문을 지나 금천교와 진선문을 통과하면 진선문 맞은편에 나오는 문이다.

 

 인정문 | 인정전으로 출입하기 위한 문이다.

 

 낙선재 | 창덕궁 동쪽에 있으며 본래 국상을 당한 왕후와 후궁들이 머물던 곳이다. 광복 이후에는 마지막 황비인 순정효황후와 황태자비 이방자 여사, 고종 황제의 외동딸인 덕혜옹주 등 대한제국 황실의 여인들이 이곳에서 여생을 보냈다.

 

 대조전 | 창덕궁의 내전 가운데 으뜸 가는 건물로, 왕비의 침전인 경복궁 교태전을 옮겨 지은 것이다.

 

 

 

3. '비원'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창덕궁 후원

 

앞서 말했듯이 창덕궁은 특히 후원이 아름다운 궁궐로 널리 알려져 있다.

현재 기준으로(2023년 4월) 창덕궁 후원을 관람하기 위해서는 미리 인터넷으로 예약을 해야 한다. 그냥 창덕궁 전각만 관람하려면 '전각관람예매'라고 하여 3,000원(성인 기준) 정도의 입장료만 내고 돈화문을 지나 인정전과 다른 전각들을 볼 수 있지만, 후원을 관람하려면 별도로 '후원관람예매'라는 것을 해야 한다. 입장료는 성인 기준 5,000원인데 인터넷으로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문제는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예약이 빨리 차는 편이라 미리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정리하자면, 후원을 제외한 창덕궁을 관람하려면 3,000원이 필요하고, 후원까지 다 보려면 8,000원이 필요하며 인터넷으로 미리 예약은 필수이다!  

 

창덕궁 후원은 인공으로 만든 연못과 정자, 전각 등이 서울의 응봉(鷹峯)으로부터 내려오는 산자락을 따라 이어져 있으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운 모습을 뽐낸다. 내가 어린 시절에는 '창덕궁 후원'이라는 말보다는 '비원(비밀의 정원)'이라는 말로 더 유명한 곳이었다. 그런데 학교 역사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비원이라는 말은 일제 강점기에 붙여진 것이니 비원이라는 말을 쓰지 말고 창덕궁 후원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하셨다. 그런데 창덕궁 후원 관람 중에 문화해설사 선생님께서 정확히 말씀해 주셨다. 실록에 보면 '비원'이라는 말이 나온다고. 따라서 창덕궁 후원, 후원, 비원 모두 맞는 말이라고 하셨다.

하지만 기왕이면 공식적인 명칭인 창덕궁 후원으로 부르면 더 좋지 않을까 싶다. 

 

 

 

▲ 주합루와 부용지 |  창덕궁 후원에서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주합루는 부용지라는 연못 앞에 세워져 있는 2층 건물이다. 1층은 왕실의 도서를 보관하는 규장각, 2층은 열람실이었는데 건물 전체를 주합루라고도 부른다. 1776년 정조가 즉위한 해에 완성되었으며, 이곳에서 정조와 신하들이 학문 연구에 힘썼다.

 

▲ 부용정 |  부용지를 사이에 두고 주합루와 마주 보고 있는 정자로, 열십자(十)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 애련정 | 애련지는 창덕궁 후원에 있는 연못 중 하나로, 그곳에 세워진 정자를 애련정이라고 한다.

 

▲ 관람정 | 창덕궁 후원에 있는 연못 중 하나인 관람지와 그곳에 세워진 정자 관람정.

 

▲ 연경당 | 창덕궁 후원에 있는 집으로, 궁궐 안에 있는 건물로서는 특이하게도 사대부가의 전형적인 형태를 지니고 있다. 순조 때에 대리청정을 맡은 효명세자가 아버지인 순조와 어머니인 순원왕후를 위한 잔치를 열기 위해 지은 연회장이었다. '경사스러운 행사를 여는 집'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 옥류천과 소요암 |  옥류천은 창덕궁 후원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개울이다. 북악산 동쪽 줄기에서 내려오는 물이 흐르는데 이곳에 있는 바위인 소요암에는 인조가 쓴 옥류천(玉流川)이라는 글씨와 숙종이 지은 시가 새겨져 있다.  

 

 

이와 같이 창덕궁 후원은 무성한 산세와 울창한 수목들에 둘러싸인 곳으로, 그 어떤 궁궐의 후원보다 넓고 경치가 빼어나 역대 조선의 임금들과 왕실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자연의 풍광에 최대한 인공미를 가하지 않고 어울리게 만든 창덕궁 후원은 자연과의 조화를 중요시한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곳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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