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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유산

흥선대원군의 쇄국 의지, 청주 척화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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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 척화비

 

 

 

 

청주 척화비는 19세기인 조선 말기 흥선 대원군이 집권할 당시에 전국 각지에 세운 척화비 중에서 충청도 청주목에 세웠던 척화비이다. 현재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 2가 중앙공원 안에 있으며, 충청북도 기념물 제23호에 지정되어 있다.

 

 

척화비는 한마디로 흥선대원군의 쇄국 의지를 나타내는 비석이다. 

 

 

척화비에는 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서양 오랑캐가 침입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자는 것이니, 화친을 주장함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글자 그대로 외국과 친하게 지내는 것을 거부한다는 쇄국의 의지를 밝힌 비석이다.

1866년 프랑스 군대가 침략한 병인양요, 1868년 독일인 오페르트가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려다가 발각된 사건 등이 일어나자 흥선 대원군은 백성들로 하여금 외세의 침략을 경계하고 쇄국의 의지를 다지기 위하여 1871년에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의 요충지 200여 곳에 척화비를 세우도록 하였다. 이때 전국에 똑같은 글자를 새긴 비석이 수백 개 세워진 것이다

 

 

 

그러나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나 흥선 대원군이 청나라로 끌려가고, 고종이 개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일본 공사의 요청으로 척화비는 모두 철거되었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척화비는 약 20개 정도이다.

 

 

 

청주 척화비도 이때에 철거되었다가 1976년에 청주시 석교동 길가에 하수구 뚜껑으로 사용되던 것을 우연히 발견하여 현재 위치인 청주시 남문로 2가 중앙공원에 옮겨 놓았다. 비신의 윗부분이 떨어져 나가 훼손되어 있으며, 남아 있는 비석은 높이가 약 1미터이며 다소 거친 화강암으로 되어 있다.

 

 

 

▲ 청주 척화비 | 청주 망선루 오른쪽에 세워져 있다.

 

 

 

 

중앙공원 안에는 척화비 외에도 충청도 병마절도사영의 출입문이었던 충청도병마절도사영문’(충청북도유형문화재 제15)과 조선시대 청주 관아 건물인 청주 망선루’(충청북도유형문화재 제110)도 남아 있다.

 

 

 

▲ 충청도병마절도사영문

 

 

▲ 청주 망선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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