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우리 문화유산

조선의 마지막 왕릉이자 최초의 황제릉, 홍릉과 유릉(홍유릉)

반응형

 

▲ 홍릉

 

▲ 유릉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에 위치한 홍유릉은 조선 제26대 왕인 고종과 그의 비인 명성황후의 무덤인 홍릉, 그리고 제27대 왕인 순종과 순명효황후, 계비 순정효황후의 무덤인 유릉을 합쳐서 부르는 말이다.

 

홍유릉은 조선왕조의 마지막 왕릉이면서 동시에 최초의 황제릉이다.

 

 

 

▲ 홍유릉 안내도

 

 

 

 

홍유릉은 다른 조선의 왕릉과 그 형식에서 큰 차이가 있다. 왜냐하면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기 때문에 이전의 왕릉과는 다른 황제릉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조선 왕릉의 석물 배치와 구조는 기본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조선왕조를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부터 고종 바로 이전의 왕인 철종의 무덤에 이르기까지 시대적 상황이나 왕의 의지에 따라 무덤의 조성 양식은 조금씩 바뀌긴 했으나 기본적인 양식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 홍릉의 석물들

 

 

▲ 홍릉의 무인석과 문인석

 

 

▲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의 홍릉 모습

 

 

 

​​

고종의 홍릉과 순종의 유릉은 황제릉의 형식을 갖추면서 이전의 조선의 왕릉들과 다음과 같은 점에서 크게 달라졌다.

 

 

첫째, 신도를 중심으로 좌우에 어도가 설치되고 참도가 3개의 단으로 되어 있다.

 

둘째, 정자각 대신에 침전이 설치되었다.

 

셋째, 봉분 앞에 있던 석물들이 침전 앞으로 옮겨졌다.

 

넷째, 비각의 위치가 정자각(침전)과 수평을 이루게 되었다.

 

 

가장 큰 변화는 정()자 모양의 정자각이 일()자 모양의 침전으로 바뀐 것이고, 또한 석물의 위치가 정자각 위의 봉분 앞이 아닌 침전 앞으로 놓이게 된 것이다.

 

 

 

▲ 홍릉의 침전 | 정자각 대신 침전이 자리하고 있다.

 

 

▲ 침전 뒤로 보이는 홍릉의 봉분

 

 

 

본래 봉분(능침) 바로 앞에 자리잡아야 하는 있는 석물들의 위치와 모양도 크게 바뀌었는데, 다른 조선 왕릉에 있던 석호와 석양(호랑이와 양) 대신 기린과 코끼리가 등장한 것이다. 또한 봉분 앞이 아니라 침전 앞으로 옮겨졌는데 이러한 변화는 모두 홍릉과 유릉이 중국의 황제릉을 참고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석물의 순서는 우선 문석인과 무석인, 그 뒤로 기린, 코끼리, 사자, 해태, 낙타, 말이 순서대로 정렬하고 있다. 특히 유릉의 경우에는 서양식 조각 수법이 반영되어 더욱 이전보다 세밀하고 사실적으로 조각되어 있다.

 

 

▲ 유릉 안내문

 

▲ 유릉의 석물들

 

 

 

▲ 유릉의 석물들 | 해태와 낙타, 코끼리, 기린 등이 있다.

 

 

▲ 유릉의 침전

 

 

 

 

홍릉(洪陵)은 우선 1895년에 을미사변(명성황후 시해사건)으로 세상을 떠난 명성황후의 무덤을 현재 서울시 동대문구 청량리(현재 홍릉수목원 자리)에 만들었다가, 1919년 고종이 세상을 떠나자 지금의 홍릉 자리에 옮겨 합장한 것이다.

 

 

유릉(裕陵)은 먼저 1904년에 현재 서울시 광진구 능동 어린이대공원 자리에 조성된 순명효황후의 무덤을 1926년 순종이 세상을 떠나자 현재의 자리로 옮겨와 합장한 무덤이다. 여기에 1966년에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후이자 조선왕조의 마지막 왕비인 순정효황후 윤씨가 세상을 떠나자 유릉에 합장되었다. 이렇게 하여 유릉은 조선의 왕릉 중 유일하게 세 분이 합장되어 있는 능이 되었다.

 

 

또한 홍유릉이 조성된 구역에는 홍유릉 외에도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의민황태자)의 무덤인 영원, 의친왕, 덕혜옹주, 그리고 마지막 황손 이구공의 무덤(회인원)까지 있다.

 

 

 

 

▲ 영원과 회인원 안내도

 

 

▲ 영원(의민황태자(영친왕)의 무덤)의 홍살문과 정자각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