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릉 | 조선 왕릉 최초의 합장릉으로 봉분(능침)이 하나이고, 앞에 혼유석은 두 개이다.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에 위치한 영릉(英陵)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훌륭한 왕으로 꼽히는 조선의 제4대 임금인 세종과 그의 비인 소헌왕후 심씨의 무덤이다. 사적 제195호에 지정되어 있다.
세종대왕릉인 영릉(英陵) 근처에는 같은 이름의 또 다른 영릉(寧陵)이 있는데, 이 능은 북벌을 추진하였던 제17대 임금 효종과 그의 비 인선왕후 장씨의 능이다. 두 왕릉은 불과 약 700미터밖에 안 떨어져 있다. 그래서 흔히 이 두 왕릉을 합쳐서 ‘영녕릉(英寧陵)’이라고 부르고 여주에서 영녕릉을 찾으면 두 왕릉을 한 번에 볼 수 있다.
영릉이라는 이름의 왕릉이 하나 더 있다. 영조의 큰아들인 효장세자의 무덤도 영릉(永陵)인데, 경기도 파주시에 있는 파주삼릉 안에 있다. 효장세자는 제21대 임금인 영조의 첫째 아들로 훗날 ‘진종’으로 추존된 왕이다. 효장세자는 사도세자의 형이며, 1719년 태어나 영조가 즉위한 이듬해에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나 불과 10세의 나이인 1728년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는 않다.
조선의 4대 임금 세종과 그의 비인 소헌왕후의 무덤인 영릉(英陵)은 조선 왕릉 중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합장릉입니다. 왕과 왕비의 무덤을 봉분을 따로 두지 않고 하나로 합친 것이다. 본래 영릉의 위치는 지금의 여주시가 아닌, 세종의 아버지인 태종의 무덤인 헌릉(지금의 서울 내곡동 헌인릉) 서쪽에 있었다. 그러나 이곳의 터가 풍수지리상 좋지 않다는 지관의 주장에 따라 예종 1년인 1469년에 현재의 위치인 여주로 이장된 것이다.
왕릉은 풍수지리적으로 당대에 으뜸가는 명당에 위치하는 것이 기본일 것이다. 특히 조선 시대를 통틀어서 세종대왕의 영릉은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동구릉), 그리고 사도세자와 정조의 융건릉과 함께 최고의 명당으로 꼽히던 곳이다.
영릉의 주산(主山)에 해당하는 북성산의 지세가 마치 봉황이 날개를 펴고 내려오는 형상이라고 하여 당대에 최고의 명당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본래 조선의 왕릉은 도성을 기준으로 하루에 이동이 가능한 80리 안에 만드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영릉은 도성으로부터 80리가 넘는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빼어난 길지(吉地)로 여겨졌기 때문에 뱃길을 이용하면 하루에 갈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이곳에 조성된 것이라고 한다.
▲ 문인석과 석물들
이렇게 만들어진 영릉은 봉분은 비록 하나지만, 그 앞에 혼유석(직사각형의 탁자처럼 생긴 넓은 돌로 영혼이 나와 노는 곳이라는 뜻)이 2개 놓여 있어 이곳이 합장릉임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영릉 일대는 다른 조선 왕릉들에 비해 매우 넓은 편이며 능역을 잘 정돈해 놓았다. 또한 봉분 앞까지 올라가서 봉분을 가까이에서 직접 볼 수도 있다.
영릉의 입구에는 세종대왕과 관련된 전시관인 세종전이 있으며, 야외에는 세종 때에 발명된 측우기, 간의, 혼천의 등의 다양한 과학기구와 모형들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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