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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미술가

신고전주의의 선구자, 자크 루이 다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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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크 루이 다비드(1748~1825)의 자화상

 

 

 

1789년 프랑스에서 일어났던 혁명(프랑스 대혁명)은 왕과 귀족 중심의 사회를 시민 중심의 사회로 빠르게 변화시켰고 유럽 전체, 나아가 세계사에 큰 획을 그은 엄청난 사건이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정치, 사회, 문화 등 인류의 모든 양식에서 변화가 일어났고, 이러한 변화의 물결은 자연스레 예술 분야에도 큰 영향을 미쳐 이전까지와는 다른 형식의 예술이 생겨날 수 있는 결정적인 밑거름이 되었다.

 

 

19세기가 시작되자, 예술은 정치적으로도 이용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프랑스에서는 신고전주의라는 새로운 미술의 형식이 나타났는데, 신고전주의는 이전까지의 귀족 중심의 우아한 미술 양식에서 벗어나 옛것에 관심을 가지자는 움직임이었다.

 

 

신고전주의 작품의 특징으로는 엄숙한 분위기, 균형 잡힌 구도(構圖), 명확한 윤곽선, 애국적이고 영웅적인 주제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시기에 이와 같은 형식으로 그림을 그린 대표적인 화가가 바로 자크 루이 다비드(1748~1825)이다. 한마디로 신고전주의라고 하면 다비드의 이름이 떠오를 정도로 그는 미술사의 한 획을 그었다.

 

 

▲ <소크라테스의 죽음> / 1787년

 

 

▲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

 

 

▲ <아킬레우스의 분노>

 

 

▲ <테니스 코트의 서약>

 

 

 

다비드의 작품 중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작품이 유독 많다. 특히 역사나 세계사 교과서에 등장하는 작품들이 많은데, 그 까닭은 다비드가 프랑스 대혁명과 관련된 역사적인 사건을 다룬 그림과 특히 나폴레옹의 초상화를 많이 그렸기 때문이다.

 

 

다비드는 1804년에 프랑스의 황제의 자리에 오른 나폴레옹의 초상화를 도맡아 그리는 전속 화가로 임명되었다.

 

 

나폴레옹이 프랑스 황제로 임명되는 장면을 그린 <나폴레옹의 대관식(戴冠式)>은 정교한 붓질과 뛰어난 색채 감각 등 다비드의 천재적인 재능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걸작이다. 이 작품 속에는 100명이 넘는 인물들이 하나하나 자세하게 그려져 있는데, 나폴레옹은 이 작품을 무척 좋아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다비드에게 더 많은 자신의 그림을 그리도록 명령했다.

 

 

사실 나폴레옹은 키도 무척 작고 겉모습도 볼품없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에서는 키도 무척 크고 더할 나위 없이 전형적으로 위대한 영웅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실제로 나폴레옹은 알프스 산맥을 넘을 때 말이 아닌 노새를 탔다고 한다.

 

 

▲ <나폴레옹의 대관식> / 1805~1807년

 

 

▲ <서재에서의 나폴레옹>

 

 

▲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나폴레옹은 자신의 모습을 미화(美化)시켜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다비드에게 그림을 많이 맡겼다.

 

 

다비드는 초상화에도 탁월한 재능을 보였지만, 초창기에는 역사적인 주제를 다룬 작품을 주로 그렸다. <소크라테스의 죽음>과 같이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 많은 작품들이 바로 이 시기에 그려진 그림이다.

 

이렇듯 옛것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고전주의를 이어 가려고 했던 신고전주의 선구자다비드는 나폴레옹이 몰락하자 다른 나라로 추방(追放)당했다가 불행하게 삶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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