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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유산

양녕대군 묘소와 사당, 지덕사(양녕대군 이제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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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덕사 |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1호

 

 

 

서울시 동작구 상도동, 지하철 7호선 상도역에서 국사봉 터널 쪽으로 쭉 올라가다 보면 오른쪽에 잘 단장된 한옥 건물들이 보인다. 이곳이 바로 조선 제3대 왕 태종(이방원)의 첫째 아들이자 제4대 왕 세종대왕의 맏형인 양녕대군 이제(1394~1462)의 묘소와 사당이 있는 지덕사이다.

정확한 문화재 명칭은 '양녕대군 이제 묘역'으로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1호에 지정되어 있다.

 

 

주소는 서울시 동작구 양녕로 167, 지덕사 바로 앞에 있는 도로명의 이름이 양녕로인 까닭이 바로 이곳에 양녕대군의 묘소와 사당이 있기 때문이다.

 

 

지덕사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국사봉 터널이 있는데, 국사봉은 관악구 봉천동과 동작구 상도동의 경계를 이루는 해발 179미터의 궁교산이란 작은 산이다. 국사봉(國思峰)이란 이름에는 양녕대군이 이곳에서 멀리 경복궁 쪽을 바라보며 나라와 동생인 세종을 걱정하였다는 데에서 유래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양녕대군은 태종의 첫째 아들로 태어나 다음 왕위를 이을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여러 문제를 일으켰는데 대부분 여인과 관련된 것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어리((於里)라는 여인과의 추문이었는데 그녀는 중추라는 벼슬을 지낸 곽선의 첩이었다. 양녕대군이 어리와 간통하였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태종은 대노하였지만 반성을 하자 처음에는 용서해 주었다. 그러나 양녕대군은 어리를 계속 만났고 나중에는 아이까지 갖게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태종은 양녕대군을 세자에서 폐하고 충녕대군(훗날 세종)을 새로운 왕세자로 책봉하였다.

 

 

폐세자가 되어 왕이 되지 못한 양녕대군은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풍류를 즐겼는데 그는 시, 서예, 음악 등 예술에 조예가 깊었다고 전해진다. 서울 숭례문의 편액도 그의 글씨라는 설이 있다

 

 

 

 

훗날 조카인 수양대군(훗날 세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어린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자, 왕실의 어른으로서 세조를 지지하기도 하였다.

지덕사라는 이름의 유래는 이미 효령대군 묘역인 '청권사'를 소개할 때 언급한 바 있다.

 

 

지덕청권이라는 말은 옛날 중국 주나라 때의 태왕이 맏아들 태백과 둘째 아들 우중에게 왕위를 물려주지 않고, 셋째 아들 계력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하자 태백과 우중이 아버지의 뜻을 헤아려 머리를 깎고 은둔하며 왕위를 사양한 일에서 비롯되었다.

 

훗날 공자(孔子)는 태백을 지덕(至德)’, 우중을 청권(淸權)’이라고 칭송하였는데, 이 말을 본떠서 첫째인 양녕대군을 모신 사당을 지덕사, 둘째인 효령대군을 모신 사당을 청권사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지덕은 '인격이 덕의 극치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양녕대군의 사당인 지덕사는 1675년에 당시 임금인 숙종의 명으로 세웠다고 한다. 처음에는 숭례문 근처에 있었는데, 1912년에 현재의 위치인 상도동으로 옮겨졌다. 사당 안에는 양녕대군과 부인 광산 김씨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양녕대군의 묘소는 사당 뒤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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