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비석은 삼국 시대에 만든 것으로, 신라 제24대 왕인 진흥왕이 한강 유역을 차지한 후에 이 지역을 둘러보고서 북한산에 세운 비석이다.
여기서 ‘순수(巡狩)’란 왕이 나라 안을 두루 보살피며 돌아다닌다는 뜻이다. 쉽게 말해 순수비는 왕이 살피며 돌아다닌 곳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란 뜻이다.
신라의 진흥왕(재위 540~576년)은 6세기에 국가 체제를 정비하여 영토를 크게 넓히고 삼국 통일의 기반을 마련한 왕이다. 진흥왕 때에 신라는 낙동강 유역의 가야를 완전히 병합하였고, 한반도의 중심인 한강 유역으로 진출하여 서해안을 통한 중국과의 원활한 교류가 가능하도록 교두보를 확보하였다.
진흥왕은 크게 넓어진 영토를 직접 다니면서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여러 개의 비석을 세웠는데, 지금까지 발견된 진흥왕 순수비는 모두 4개이다.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국보 제33호)’, ‘마운령 진흥왕 순수비(북한 국보 제111호)’, ‘황초령 진흥왕 순수비(북한 국보 제110호)’, 그리고 국보 제3호인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이다.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는 본래 서울 북한산 비봉 위에 있었는데,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져 보존되고 있다. 비석은 화강암으로 되어 있으며 높이는 약 16미터, 폭이 약 70센티미터 정도이다.
이 비석은 북한산에 옛날부터 있었지만, 정확한 실체는 오랫동안 밝혀지지 않고 있다가 조선 말기인 1816년에 추사 김정희가 비문을 해석하여 진흥왕 순수비로 밝혀졌다고 한다.
비문에는 진흥왕의 영토 확장과 강력한 왕권을 서술한 내용, 당시의 관직 제도와 인물에 대한 내용 등이 담겨 있다. 비석이 세워진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555년부터 568년 사이로 추정된다. 당시 신라의 영토와 삼국의 관계, 지방과 군사 제도 등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우리 문화유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조반정 때 칼을 씻었다는, 세검정 (0) | 2023.09.09 |
---|---|
조선 시대 성곽과 성문, 홍지문과 탕춘대성 (0) | 2023.09.09 |
국보 제86호, 경천사지 10층 석탑 (1) | 2023.09.09 |
양녕대군 묘소와 사당, 지덕사(양녕대군 이제 묘역) (0) | 2023.09.09 |
행주대첩의 역사적 현장, 행주산성 (0) | 2023.09.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