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검정 |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4호
서울시 종로구 홍지동에 있는 상명대학교 입구인 세검정 삼거리를 지나가다 보면 서울에서는 아주 유명한 '세검정'이라는 정자 하나가 있다.
서울시 종로구 신영동에 있는 세검정은 홍제천 바로 옆에 세워진 정자이다.
세검정 삼거리를 가운데에 두고 왼쪽으로는 홍지문과 탕춘대성이 있고 오른쪽에는 세검정이 있는데, 두 곳의 거리는 불과 걸어서 5분 거리이다.
한양 도성의 북소문인 창의문(일명 자하문)에서 가까운 이 동네는 북악산과 삼각산(북한산) 사이에 있으며 아주 옛날부터 계곡이 있어 시원하고 경치가 빼어나기로 유명한 곳이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문학 작품 속에도 자주 등장하는데, 정약용이 지은 <유세검정 遊洗劍亭>이란 시가 대표적이다. ‘세검정에서 노닐다’라는 뜻의 이 시는 정약용의 저서인 <여유당전서>에 실려 있는데 그가 1795년에 세검정을 방문하여 주변 풍관을 보고 쓴 것이라고 한다. <동국여지비고>에는 역대 왕들의 실록이 완성되면 반드시 세검정에서 ‘세초(洗草, 실록을 편찬하면서 사용된 먹물로 쓴 사초와 원고들을 물에 씻어 글씨를 없애는 일)’를 하였다는 말이 있다.
또한 겸재 정선이 그린 <세검정>이라는 부채 그림도 있다.
세검정(洗劍亭)이란 이름은 ‘칼(검)을 씻은 정자’라는 뜻이다. 세검정이란 이름의 유래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인조반정(1623년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가 왕위에 오른 사건) 때에 이귀, 김유 등 반정을 주도했던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광해군의 폐위를 의논하고 군사들이 칼을 갈아 씻으며 반정을 준비하였다는 이야기이다.
실제로 반정군은 이곳에서 가까운 창의문을 통하여 도성 안으로 들어가 반정을 성공시켰지만, 세검정에서 칼을 씻었다는 이야기는 후대에 지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세검정을 언제 처음 만들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1748년(영조 24년)에 정자를 고쳐 지으면서 세검정이란 현판을 달았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1941년에 정자는 화재로 사라졌고, 현재 남아 있는 정자는 겸재 정선의 그림을 참고하여 1977년에 복원한 것이다.
'우리 문화유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울 아차산에 있는 삼국 시대의 산성, 아차산성 (0) | 2023.09.14 |
---|---|
누에신(잠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서울 선잠단지 (0) | 2023.09.14 |
조선 시대 성곽과 성문, 홍지문과 탕춘대성 (0) | 2023.09.09 |
국보 제3호,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 (0) | 2023.09.09 |
국보 제86호, 경천사지 10층 석탑 (1) | 2023.09.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