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스타브 쿠르베(1819~1877)
▲ <안녕하세요, 쿠르베 씨>
18세기 후반부터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 혁명은 생산 기술의 획기적인 발달과 사회 조직의 변화뿐만 아니라 예술 전반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산업 혁명의 영향으로 농업 중심의 사회는 빠르게 공업 중심의 사회로 변모하였고, 공장이 모여 있는 도시를 향해 사람들은 빠르게 이동하였다. 도시가 비대해지면서 급격한 도시화가 진행되었고, 인간의 생활은 기계적이고 형식적인 생활로 점차 빠르게 바뀌어 갔다.
서양 미술에서 이 시기에는 ‘낭만주의’라는 사조가 퍼져나갔다. 낭만주의는 기계적이고 형식적인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화가의 감정과 상상력을 중요시하는 양식이었다.
그러나 낭만주의와는 반대로 세상을 눈에 보이는 대로 사실적으로 그리고자 한 사람들이 있다. 이것이 바로 사실주의인데,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화가가 바로 쿠르베이다.
보통 서양 미술의 역사에서 사실주의라고 하면 바로 이전에 등장했던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뒤를 이어 등장하여 대략 1840년 무렵부터 19세기 후반까지 등장한 새로운 사조를 말한다. 사실주의라는 말 자체가 굉장히 넓은 범위를 가리키기 때문에 그냥 ‘리얼리즘(Realism)’이라고 하면 이 시대의 사실주의를 뜻한다.
리얼리즘은 이 당시에 미술뿐만 아니라 문학계에서도 등장하였고, 리얼리즘을 표방했던 미술가뿐만 아니라 문학가들은 공통적으로 당시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관찰하고 기록하여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쿠르베 역시 이런 화가 중 하나였다.
▲ <화가의 아틀리에>
▲ <오르낭의 매장>
이 시기의 사회 현실은 냉정하였고 비참하기까지 하였다. 공장의 기계들에게 일자리를 빼앗긴 사람들, 도시화로 인해 거대해진 대도시의 뒷골목에 모여 가난하고 힘겹게 사는 사람들, 사실주의 화가들은 조금은 무겁고 어두운 이러한 모습을 빠뜨리지 않고 화폭에 고스란히 담으려고 했다.
쿠르베는 1819년 스위스와의 국경에서 가까운 프랑스의 오르낭이라는 도시에서 부유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기 위해 파리로 올라왔으나, 그곳에서 그림 그리기에 전념하기로 결심하고 화가가 되었다. 28살에 떠난 네덜란드 여행에서 렘브란트의 그림을 보고 큰 감명을 얻고 그의 화풍을 연구하기도 했다.
▲ <프루동과 그의 아이들>
▲ <돌 깨는 사람들>
31살이 된 쿠르베는 드디어 자신만의 독특한 사실주의적인 작품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주로 농민과 노동자, 가난한 사람들의 평범하면서도 거친 모습을 있는 그대로 화폭에 담기 시작하였다. 사실주의에 대한 쿠르베의 믿음은 다음과 같은 그의 말을 통해 알 수 있다.
예술가들은 진실을 그리기 위해 지금, 여기를 향해 열린 시선이 필요하다.
요컨대 머리가 아니라 눈으로 바라보아야만 하는 것이다.
▲ <체로 곡식을 거르는 사람들>
한번은 그에게 천사의 그림을 그려 달라는 주문이 들어왔다. 이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은 말로 거절했다고 한다.
나는 천사를 그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한 번도 천사를 직접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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