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우리 문화유산

서울 아차산에 있는 삼국 시대의 산성, 아차산성

반응형

 

 

▲ 아차산성(사적 제234호)

 

 

 

 

서울시 광진구와 경기도 구리시에 걸쳐 있어 두 도시의 경계를 이루는 아차산에는 삼국 시대에 쌓은 성곽인 아차산성이 있다.

 

아차산 정상에 오르면 북쪽으로 북한산, 도봉산 일대가 훤히 보일 뿐만 아니라 남쪽으로는 한강과 한강 남쪽의 몽촌토성, 풍납토성(백제의 도읍이었던 하남위례성으로 추정되는)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이와 같은 지리적 이점 때문에 한강 유역을 두고 치열하게 다투었던 백제, 고구려, 신라는 이곳 아차산성을 두고 치열한 격전을 벌이기도 했다.

 

 

 

사적 제234호인 아차산성은 둘레가 약 1,000미터에 이르는 산성으로, 아차산 정상에서 약간 남쪽으로 내려와 한강 방향에 치우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서기 286년 고구려를 대비하기 위해 성을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이미 백제가 쌓은 성으로 여겨진다.

 

현재는 성벽들이 많이 무너져 있어 흙과 돌이 뒤섞여 쌓은 듯이 보이지만, 본래 성벽의 높이는 7~10미터에 이른다.

 

 

▲ 아차산성 입구 만남의 광장 앞에 있는 온달 장군과 평강 공주 상

 

 

 

<삼국사기>에 따르면 475년에 백제의 개로왕이 고구려군에게 사로잡혀 이곳 아차산성에서 살해되었다고 한다. 이 일을 계기로 백제는 한성을 잃고 웅진(지금의 공주)으로 도읍을 옮기게 되었다.

 

또한 고구려 평원왕(재위 559~590)의 사위인 온달 장군은 신라군과 싸우다가 이곳에서 전사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두 사건으로만 보아도 아차산성이 얼마나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여러 기록과 당시의 정황으로 보아, 아차산성은 본래 백제가 한성을 방어하기 위하여 쌓았지만 훗날 고구려와 신라가 차례로 점령하여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남아 있는 성벽들은 7세기 이후 신라가 쌓은 것이라고 한다.

 

 

▲ 아차산성 입구 아차산 생태 공원 위쪽에는 아차산 역사문화 홍보관이 있다.

 

▲ 아차산성 서쪽 성벽

 

▲ 아차산성 성벽 앞의 안내판 |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을 소개하고 있다.

 

 

 

아차산에서는 고구려가 만든 보루성 유적이 발견되었으며 이곳에서 성벽과 건물터, 온돌을 설치한 흔적과 많은 토기와 철기가 발견되기도 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