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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유산

을사늑약이 체결된 곳, 덕수궁 중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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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수궁 중명전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53호에 지정되었다가, 사적 제124호인 덕수궁에 포함되었다. ​

 

 

 

현재 서울시 중구 정동에 있는 덕수궁 뒤쪽 돌담길과 예원학교 사이에 있는 중명전은 본래 덕수궁(당시 이름은 경운궁) 경내에 있던 건물이었다. 조선 말기인 대한제국 시대에 이 일대는 서양 선교사들과 여러 외국의 외교관들이 주로 머물던 곳으로, 중명전 바로 뒤쪽에는 구 러시아 공사관 건물이 남아 있기도 하다.

 

 

중명전은 1897년에 덕수궁(경운궁)을 확장할 때 대한제국의 황실 도서관으로서 지어진 건물이다.

본래 이름은 수옥헌((漱玉軒)’이었다.

2층의 벽돌집이며 덕수궁 정관헌과 독립문을 설계했던 러시아의 건축가 사바틴이 설계하였다.

1904년에 덕수궁에 큰 화재가 일어나자 고종의 집무실이자 외국 사절을 알현하는 곳으로도 사용되었다.

 

 

정면에서 바라본 중명전

​▲ 측면에서 본 모습

​▲ 후면에서 본 모습

 

▲ 내부는 전시실로 꾸며져 있다.

 

 

 

 

본래 덕수궁 안에 있던 중명전은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에 중명전을 포함한 일대가 덕수궁에서 제외됨으로써 오늘날과 같이 덕수궁 담 바깥에 위치하게 되었다.

 

 

중명전은 비운의 역사적 현장이기도 하다. 190511월에 바로 이곳에서 일제에 의해 우리나라의 외교권이 완전히 박탈당한 을사늑약(을사조약)이 체결되었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한때 사교클럽으로 사용되기도 했다가 여러 차례 소유주가 바뀌었고 2010년부터 전시관으로 일반인에게 공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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