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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유산

삼국 시대의 산성, 하남 이성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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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산성 동문지 | 이성산성은 사적 제422호에 지정되어 있다.

 

▲ 남문지 근처의 석축

 

 

 

서울시 강동구와 송파구에 맞닿아 있는 경기도 하남시 한가운데에는 춘궁동이라는 동네가 있는데, 이곳에 이성산(二聖山)이라는 해발 208미터의 작은 산이 있다.

 

이성산이라는 이름은 백제의 두 왕자가 이 산에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 전설과 관련이 있는지 이 산에는 삼국 시대의 산성인 이성산성이 있다.

 

 

경기도 하남시는 오랫동안 역사학계의 수수께끼였던 백제의 첫 번째 도읍이자 왕성인 위례성은 어디에 있었을까?”라는 질문에 유력한 후보지로 지목되었던 곳이다.

 

 

이러한 주장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정약용은 <아방강역고>에서 한강에 인접한 땅의 남북 즉, 광주고읍(지금의 하남시 춘궁동 일대)이 위례성이라는 주장을 한 바 있다.

 

 

​▲ 8각 건물지

 

 

▲ 9각 건물지

 

 

​▲ 장방형 건물지

 

 

 

 

그러나 대규모의 백제 초기 유물이 발굴되어 현재는 거의 백제 초기 왕도인 위례성 또는 한성으로 여겨지는 몽촌토성과 풍납토성에 비해, 이성산성에서는 아직까지 이렇다 할 백제의 유물이 발견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성산성이 백제의 왕도였다는 의견은 힘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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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여러 차례 발굴 조사를 통해 이곳에서 신라의 유물이 다수 발견되었고, 저수지 근처에서 무진년정월십이일 붕남한성도사(戊辰年正月十二日 朋南漢城道使)”라는 글자가 쓰여진 목간이 발견되면서 당시 한강 유역과 이 일대를 차지하고 있던 신라가 쌓은 산성이라는 것이 정설로 여겨지고 있다. 여기서 무진년은 서기 603년으로 추정된다.

 

 

다만, 여러 차례 무너지고 다시 쌓은 흔적이 보이기 때문에 처음에 성을 쌓은 나라가 백제인지 고구려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따라서 명확하게 삼국 중 어느 나라의 산성이라고 하기보다 그냥 삼국 시대의 산성이라고 표현하면 무난할 것이다.

 

 

​▲ 이성산성 동문지 | 본래의 성벽과 복원한 성벽이 색깔로 잘 구분된다. 동문지 위에서 바라보면 하남시 일대와 한강이 한눈에 보인다.

 

 

 

이성산성의 위치는 북쪽으로 한강이 잘 보이고, 산줄기가 남쪽으로는 남한산성이 있는 남한산, 동쪽으로는 용마산과 검단산으로 이어져 있어 지리적으로 군사적 요충지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북쪽으로는 한강 유역을 감시하고, 남쪽의 평야 지대로부터 오는 적을 잘 방어할 수 있는 위치이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에 걸친 발굴 조사를 통해 성 안에서는 동문지와 남문지, 2개의 저수지, 그리고 장방형, 8, 9, 12각 등의 건물 터가 발견되었으며 목제 인물상, 철제 농기구, 무기, 벼루, 토기, 기와 등의 다양한 유물이 발굴되었으며 일부 성벽이 복원되었다. 

 

 

​▲ 저수지 | 사진 왼쪽에 석축을 쌓은 것이 보인다. 네 면의 가장자리에 석축을 하여 그 안에 물을 저장하였음을 알 수 있다.

 

▲ 이성산성 남문지 | 길게 이어진 언덕 같은 지형 밑에 석축이 드문드문 보인다.

 

 

 

산 정상 근처에서 발견된 여러 개의 건물 터에서는 건물의 초석들이 남아 있으며, 저수지에서는 돌로 쌓은 석축과 성벽, 배수로 등도 남아 있다. 산 능선을 따라 이어진 성벽의 길이는 약 2킬로미터 정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성산성은 사적 제422호에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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