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우리 문화유산

조선 왕실의 후원이 있던 곳, 서울 경모궁지(함춘원지)

반응형

▲ 서울 경모궁지 | 함춘원과 경모궁이 있던 터로, 현재는 함춘문과 석단만 남아 있다.

 

 

서울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은 조선 시대의 궁궐 중 특이하게도 동쪽을 향해 지어져 있다.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있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연건동) 자리에는 본래 조선 시대의 왕실 정원인 함춘원(含春苑)이 있었다.

 

 

 

9대 임금 성종 때 만들어진 함춘원(含春苑)은 창경궁에 딸린 후원이었는데, 영조 40(1764)에 사도세자의 사당을 이곳으로 옮겨 지었다. 훗날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는 왕위에 오르자 함춘원에 있는 사도세자의 사당을 ‘경모궁(景慕宮)’으로 이름을 바꿔 불렀고, 사도세자를 장헌세자로 추존하였다.

 

다시 말해 이곳은 창경궁의 부속 정원인 함춘원이 있던 자리이자, 사도세자의 사당인 경모궁이 있던 자리이다.

 

 

조선 말기인 1899년에는 대한제국을 선포했던 고종이 다시 장헌세자를 장조로 추존하면서 경모궁에 있던 장헌세자의 신위를 종묘로 옮겼다. 세자가 아닌 왕의 신분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경모궁도 그 기능을 점차 잃었는데, 1900년에는 태조, 세조, 성종, 숙종, 영조, 순조 등 여러 왕의 어진(임금의 초상화)을 모신 영희전이라는 전각을 경모궁으로 옮겨 세웠다.

 

의궤에 그려진 경모궁지 | 영조 때에 비해 정조 때에 부속 건물이 많이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

 

 

▲ 일제 강점기에 경성제국대학이 들어서기 전 경모궁지의 모습

 

 

그러다가 일제 강점기에 이 일대에 경성제국대학 의학부가 세워지면서 원래 모습은 사라졌고 6.25 때 대부분 건물이 불타 없어지고 말았다.

 

현재는 돌로 쌓은 석단(石壇)과 함춘문(含春門)만 남아 있다. 석단은 길이 30미터나 되고, 앞에 네 개의 돌계단이 남아 있다. 함춘문은 함춘원과 경모궁을 드나들던 문으로 정면 3, 측면 2칸의 규모를 갖고 있다.

 

 

함춘문과 석단만 남은 오늘날의 모습

 

현재 함춘원 터는 서울시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 안에 있다. 서울대학교 병원 본관 바로 뒤에 있는 함춘원 터는 함춘원지(含春苑址)’로 불리다가 현재는 서울 경모궁지(景慕宮址)’로 이름이 바뀌어 사적 제237호에 지정되어 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