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우당 | <지봉유설>을 쓴 이수광이 살던 집으로, 서울시 종로구 창신동에 있다.
조선의 도읍인 한양을 둘러싸고 있는 한양도성은 내사산((內四山, 북악산, 인왕산, 낙산, 남산)을 이어서 쌓은 성곽이다.
그중에서 흥인지문(동대문)에서 북소문인 혜화문까지 이어지는 낙산은 내사산 중에서 가장 완만하고 높이가 낮은 산으로, 풍수상으로는 한양의 좌청룡에 해당된다.
옛날에는 산의 모습이 마치 낙타의 등처럼 생겼다고 하여 ‘낙타산’이라고 불렸기 때문에 여기서 오늘날의 낙산이란 이름이 유래되었다.
현재 낙산에는 ‘낙산 공원’이 조성되어 있는데, 경사가 완만하여 다른 성곽 코스에 비하여 가볍게 산책하기에 좋고 특히 밤에는 한양도성 성벽과 어우러진 야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 비우당 | 서울 명신초등학교 바로 옆에 있는데, 아파트 단지 사이에 둘러싸여 있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 비우당 옛 터 표지석
낙산 공원과 인접해 있는 지하철 6호선 창신역에 내리면 ‘지봉로’라는 길이 있다. 여기서 ‘지봉’이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실학의 선구자로 알려진 이수광(1563~1628)의 호이다. 그는 <지봉유설(芝峯類說)>이란 책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다.
이곳에 지봉로라는 도로명이 붙여진 까닭은 근처에 이수광이 살았던 집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비우당’이다.
지하철 6호선 창신역에 내려 큰길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단종 비 정순왕후가 살았던 정업원 터(청룡사)가 있으며, 서쪽으로 산을 조금만 오르면 명신초등학교 바로 옆에 비우당이 있다.
이수광은 관직에서 물러나 비우당에 머물며 우리나라 최초의 문화백과사전으로 여겨지는 <지봉유설>을 완성하였다.
이수광의 호인 지봉(芝峯)도 집 근처에 있는 낙산의 한 봉우리 이름이 지봉이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수광은 어린 시절부터 이 동네에 살았는데, 임진왜란 때 집이 불타버리고 다시 지은 뒤에 ‘겨우 비나 피할 수 있는 집’이란 뜻으로 비우당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 자주동샘 | 비우당 뒷마당에 있는 우물로, 정순왕후와 관련된 전설이 서려 있는 곳이다. 바위에 '자지동천'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여기서 자지(紫芝)란 자주색을 띄는 풀이름을 말한다.
현재 비우당이 있는 이 일대는 조선 시대에는 ‘자줏골’이라는 동네였다. 비우당 뒷마당에는 ‘자지동천(紫芝洞泉)’이라고 바위에 글자가 새겨져 있는 작은 우물이 있는데, 단종 비인 정순왕후 송씨가 정업원에 머물며 이곳에서 빨래를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빨래가 자주색으로 염색이 되었다고 하여 ‘자줏골’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비우당은 본래 터만 남아 있었지만, 낙산 공원을 조성하면서 현재 위치에 비우당을 복원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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