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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유산

조선 시대의 관아, 인천 도호부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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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도호부청사 |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호

 

 

인천 문학 경기장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인천 도호부청사는 조선 시대에 인천 지역을 다스리던 관아가 있던 곳이다.

 

 

먼저 ‘도호부(都護府)’란 무엇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겠다.

조선 시대에는 전국을 크게 8도로 나누어 그 아래로 부(), (), (), ()을 두어 각각 지방관(수령)을 파견하여 다스렸다.

 

도호부란, 본래 중국에서 주로 이민족과의 국경 지역에 설치하였던 행정기관의 이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시대에 처음으로 중국과 같이 군사적 요충지에 설치되었는데, 조선 건국 후에는 태종 때에 지방 행정 제도를 개편하면서 군() 중에서 인구가 1,000호 이상인 곳을 관할하도록 도호부를 설치하였다.

 

따라서 도호부는 상급 기관인 목()과 하급기관인 군() 사이에서 행정을 맡았던 지방 관청이다.

 

 

 

▲ 인천도호부 청사 입구

 

​▲ 삼문(三門) | 객사를 출입하는 문으로, 삼문을 지나면 객사가 있다.

 

▲ 중문(三門) | 동헌을 출입하는 문으로, 중문 뒤로 동헌이 있다.

 

 

 

세종 때만 해도 전국의 도호부는 38개였지만 그 후 전국적으로 인구수가 늘어나면서 고종 때에는 도호부의 수가 75개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러다가 1894년 갑오개혁으로 도호부는 전부 폐지되어 ''으로 통합되었다.

 

도호부의 수령은 중앙에서 파견된 도호부사였으며, 그 아래로 지방의 향리 중에서 이호예병형공(吏戶禮兵刑工) 6방이 임명되어 수령을 보좌하였다.

 

 

 

객사(客舍) | 관아에서 객사는 중앙에서 내려온 관리의 숙소이면서, 동시에 임금의 위패를 모시는 신성한 건물이다. 수령의 집무실인 동헌보다도 격이 높았기 때문에 보통 관아에서 전망이 좋은 곳에 자리 잡으며, 건물도 큰 편이다.

 

​▲ 공수(公須) | 객사의 부속 건물로, 부엌과 곳간, 온돌방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 아문(衙門) | 관아의 정문을 아문이라고 한다. 2층의 누대에 팔작지붕을 한 형태이다.

 

 

▲ 동헌(東軒) | 동헌은 수령의 집무실로, 객사와 함께 관아의 중심 건물이다. 보통 관아는 객사의 동쪽에 위치하기 때문에 동헌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보통 관아라고 하면 좁게 말해 수령의 집무실인 동헌을 가리킬 정도로 지방 행정의 중심 건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인천 도호부는 지금의 인천광역시 지역을 다스리던 행정기관이었으며, 강화도, 영종도, 덕적도 등도 모두 관할하였다.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호에 지정된 인천 도호부청사는 조선 시대에 인천 도호부의 수령이 머물며 행정을 펼쳤던 관아의 건물들이다. 본래는 15~16개의 건물이 있었지만, 현재는 문학초등학교 안에 객사와 동헌의 일부만 남아 있다.

 

 

현재는 일반인들을 위해 문학초등학교 바로 옆에 일정한 부지를 마련하여 도호부 청사 건물들을 복원해 놓았다. 관아의 전형적인 배치와 형식에 맞게 동헌과 객사, 아문, 삼문, 중문 등의 건물들이 잘 복원되어 있어서 학생들의 현장 체험학습 공간으로도 활용도가 높으며, ​​경내에는 조선 시대의 공립 교육기관인 인천향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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