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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유산

나라의 급한 소식을 주고받던, 목멱산 봉수대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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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멱산 봉수대 터 |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14호

 

 

 

봉화(烽火)를 영어로는 ‘Signal Fire’라고 한다. 불로 보내는 신호라는 뜻인데, 교통이나 통신이 발달하지 못했던 옛날에는 이렇게 불을 피워서 신호를 보내곤 하였다.   

 

 

특히 나라에 큰 변란이 있거나 외적이 쳐들어왔을 때 먼 곳에 빠르게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는 봉화와 파발이 필수적이었다. 특히 봉화는 나라의 국경이나 변방의 급한 소식을 한양 도성으로 빨리 전달하고, 상황이 발생한 지역의 백성들에게도 소식을 알리는 역할을 하는 통신 수단이었다아무래도 말을 타고 문서를 직접 전하는 파발보다는 봉화가 빠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봉화를 전하기 위해서 세운 시설을 봉수대라고 한다. 봉수대는 멀리서도 불과 연기가 잘 보이도록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대부분 지대가 높은 산봉우리에 만들었는데, 밤에는 횃불을 피우고, 낮에는 연기를 피워서 신호를 보냈다.

 

봉화를 이용한 것은 삼국 시대 때부터였다. 고려 시대에 이르러서 봉수대 시설을 만들다가 조선 초기에는 각 도의 요충지마다 봉수대를 만들었다.

 

 

 

▲ 목멱산 봉수대는 남산 타워 바로 옆에 있다.

 

 

 

전국에서 봉화로 보내온 신호가 마지막으로 집결되는 곳이 바로 이곳 목멱산 봉수대였다. 목멱산은 서울 중심에 있는 남산의 옛 이름이다. 서울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꼽히는 남산 타워 바로 옆에 목멱산 봉수대 터가 남아 있다.

 

 

 

목멱산은 조선의 도읍인 한양 도성을 둘러싸고 있는 4개의 산, 즉 내사산(內四山) 중 하나였다. 북쪽의 백악산(북악산), 동쪽의 타락산(낙산), 서쪽의 인왕산, 그리고 남쪽의 목멱산(남산)이 바로 내사산이다. 현재에도 목멱산 봉수대 옆으로 한양 도성의 성벽이 이어져 있다.

 

 

▲ 봉수대 아래로 이어진 한양 도성 성벽

 

▲ 목멱산 봉수대 바로 옆에 남아 있는 국사당 터 표지석. 국사당은 목멱산의 산신을 위해 제사를 지내던 사당이었다.

 

 

 

목멱산 봉수대는 서울에 있다고 하여 경봉수(京烽燧)’라고도 불렸는데, 현재 남아 있는 봉수대는 1993년에 김정호의 <청구도> 등의 자료를 참고로 하여 남산에 있던 다섯 개의 봉수대 중 하나를 복원해 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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