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충청도의 중심지 중 하나였던 옛 홍주
▲ 홍주성 성벽 | 홍주성은 사적 제231호에 지정되어 있다.
홍성은 옛날부터 서해안과 맞닿아 있는 충청도 지방의 군사적 요지이자 교통의 중심지였다.
18세기 중반에 실학자인 이중환이 쓴 <택리지>에는 “충청도에서는 내포(內浦)가 가장 좋은 곳이다.”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내포란 공주에서 서북쪽으로 2백 리 떨어진 가야산의 앞뒤에 있는 열 고을을 가리키는 말이다. 오늘날의 예산, 당진, 서산, 그리고 홍성에 해당하는데, 특히 홍성은 내포의 중심으로 여겨졌다. 특히 땅이 평평하고 기름지고 바다도 가까워 먹을거리가 풍부한 곳이었다.
홍성은 삼국 시대에는 백제의 영토였는데, 백제가 멸망할 때 백제 부흥 운동이 일어났던 ‘주류성’이 지금의 홍주성이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고려 시대에는 운주로 불렸고, 조선 시대에는 충주, 청주, 공주, 홍주의 충청도 4목 중의 하나로 충청도의 중요한 지역 중 하나로 꼽혔다. 그러다가 일제 강점기에 홍주군과 결성군이 합쳐져서 오늘날의 홍성이 되었다. 홍성의 옛 이름은 홍주였던 셈이다.
▲ 김좌진 장군 동상 | 홍성종합터미널에서 조양문 방향으로 걷다 보면 ‘장군상오거리’가 나오는데 그 오거리에 김좌진 장군 동상이 우뚝 서 있다.
이러한 홍성에서는 우리나라 역사에 길이 남을 뛰어난 인물이 많이 태어났다. 대표적으로 청산리 대첩으로 잘 알려진 김좌진 장군, 그리고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만해 한용운 선생, 고려 말의 충신 최영 장군, 그리고 사육신의 한 명인 성삼문이 바로 홍성 출신이다.
홍성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으로는 홍주성과 홍주 의사총이 있는데, 모두 홍성 종합버스터미널에서 걸어서 이동이 가능할 정도로 가까운 편이다. 따라서 전국 어디에서나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방문하기에 편리하다.
▲ 홍주아문 | 옛 홍주목 동헌의 입구로 외삼문이다. 보통 동헌이나 객사 앞에는 통로가 셋인 삼문을 세웠는데, 큰 읍성에는 삼문이 2개씩 있어 안쪽의 문을 내삼문, 바깥쪽의 문을 외삼문이라고 하였다. ‘아문’은 관아의 출입문을 뜻한다. 홍주아문은 1870년 홍주목사 한응필이 홍주성을 대대적으로 보수하면서 같이 세운 문이다. 현재 홍성군청 입구에 있다.
▲ 안회당(安懷堂) | 옛 홍주목 관아의 동헌(東軒)이다. 동헌이란 지방 관아에서 수령이 행정을 맡아 보는 중심 건물을 말한다. 1678년에 처음 지어졌고, 1870년에 목사인 한응필이 크게 다시 지었는데, 안회당이란 현판을 흥선대원군이 하사하였다고 한다. 현재 현판은 전해지지 않는다.
▲ 여하정 | 동헌 뒤뜰에 있는 작은 연못에 세워진 정자이다. 1896년에 세운 것으로, 이곳에서 홍주목사들이 관아 일을 돌보다가 휴식을 취하였다고 한다.
2. 조선 시대의 읍성 중 하나인 홍주성
사적 제231호에 지정되어 있는 홍주성(洪州城)은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에 있는 조선 시대의 읍성이다.
읍성(邑城)이란, 지방의 주요 지역에 백성들을 지키고 행정을 관할하기 위해 쌓은 성을 말한다. 홍주성은 조선 세종 때에 돌로 쌓은 성인데, 그 전부터 이곳에는 토성이 있었다고 한다. 이때 쌓은 성곽의 길이는 1.7킬로미터 정도였는데 현재는 약 800미터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다.
▲ 조양문 | 홍성을 대표하는 상징물이기도 한 조양문은 홍주성의 동문이다. 문 양쪽으로 이어져 있던 성벽은 도로로 잘려 있어 성문만 남아 있다.
홍주성 안에는 지금도 옛 홍주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데, 현재 홍주성 안에 있는 홍성군청 자리가 바로 조선 시대에 홍주 동헌이 있던 곳이다.
오늘날 조선 시대 관아의 모습이 남아 있는 곳은 흔치 않은데, 홍성군청 안에는 동헌 건물인 안회당과, 동헌의 입구이자 외삼문인 홍주아문, 그리고 정자인 여하정이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남아 있다.
▲ 흥화문 | 홍주성의 남문이다.
홍주성을 보기 위해서는 조양문을 먼저 찾는 것이 좋다. 홍주성의 동문이자 오늘날 홍성군의 상징물이기도 한 조양문은 1870년(고종 7년)에 홍주목사 한응필이 홍주성을 대대적으로 보수하면서 세운 문루이다.
이때 홍주성의 동서남북에 문루를 다시 세웠는데, 동문은 조양문, 서문은 경의문, 북문은 망화문이라고 하였고, 남문은 문루가 없는 홍예문(무지개처럼 생긴 문이란 뜻)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성벽과 문루가 헐리고, 1978년에 일어난 지진 때문에 크게 무너지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서문과 북문은 완전히 없어져 터만 남았고, 동문인 조양문도 일제 강점기에 사라질 위험에 처했지만, 홍성군민들의 결사적인 반대로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도 지켜 낼 수 있었다고 한다. 남문은 2013년에 복원되어 홍화문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 홍주옥 순교 성지 | 홍주성 안에 있는 홍주 옥이 있던 자리이다. 보통 관청(동헌) 근처에 옥이 있었으므로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관청 자리에서 형벌을 받고 순교하였다. 이곳도 조선 말기에 천주교 박해가 계속되면서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갇히고 순교한 곳이다.
▲ 홍주 옥사 | 2012년 현재의 위치에 복원되었다.
이곳 홍주성에서는 1906년에 의병과 일본군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기도 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에 반대하여 민종식, 이세영, 채광묵 등이 의병을 일으켰고, 이듬해인 1906년 5월에 약 1천 명의 의병을 이끌고 홍주성을 공격하여 일본군을 몰아냈다.
그러나 13일에 걸친 항전 끝에 수백 명의 목숨을 잃고 결국 일본군에 다시 홍주성을 내주고 말았다. 이때 순국한 의병들의 유해를 모신 곳이 바로 ‘홍주 의사총(사적 제431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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