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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유산

근대 건축물, 고려대학교 본관과 중앙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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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대학교 본관 | 사적 제285호이다.

 

 

 

1. 사적으로 지정된 본관과 중앙도서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대학교 캠퍼스 안에 국가 지정 문화재가 있는 경우가 제법 있다. 이러한 문화재들은 대부분 조선 말기나 대한제국 시대, 또는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건물들인데, 먼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사학의 명문 안암골 호랑이고려대학교를 찾아가 보았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고려대학교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사학의 명문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연세대학교와 더불어 매년 실시하는 연고전, 또는 고연전은 양교 학생들의 자부심과 경쟁심을 바탕으로 한 대표적인 대학 축제로 자리잡고 있다. 흔히 서연고, SKY라고 불리는 대한민국 학벌 서열화의 정점에 위치해 있는 학교 중 하나로 설립 초기인 보성전문대학 시절부터 우리나라의 명문 사학으로 여겨지며 오랫동안 동문 간의 끈끈한 유대감으로도 유명한 학교이다. 일제강점기 보성전문학교 시절 인촌 김성수가 인수했으며 광복 후인 1946년 종합대학으로 승격하면서 이때 교명을 오늘날과 같은 고려대학교로 변경했다.  

굳이 '조선'도 아니고 '고구려'도 아니고 '고려'라고 지은 까닭은 무엇일까? 기록에 따르면 인촌 김성수는 이 대학이 우리나라와 민족을 대표하는 대학이 되어야 한다는 뜻에서 지었다고 하는데, '조선'이나 '한국'은 이민족에게 수모를 당한 일이 있으므로 꺼렸고, 비록 고려도 몽골이나 여진족에게 수모를 당한 일이 있으나 고구려의 영광을 계승하였고 외국에도 널리 코리아, 또는 꼬레라는 명칭이 알려져 있으니 고려라는 이름이 좋겠다고 생각하여 이렇게 되었다고 한다.  

아무튼 고려대학교가 오늘날과 같이 명문으로 여겨진 데에는 소탈하면서도 비판적이고 끈끈하고 강인한 의식의 학우들이라는 이미지가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고려대학교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자유당 독재 정권 시절의 '4.18 고려대 시위'이다. 이 사건은 4.19 혁명의 시작으로 여겨지며 많은 이들에게 각인되어 있다. 3.15 부정선거 후 자유당의 독재 정권을 규탄하며 벌인 고려대 학생들의 이승만 정권 반대 시위는 많은 시민들에게 공감을 얻었다. 

 

고려대학교 서울캠퍼스는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로 145에 위치해 있다. 

서울 고려대학교 안암캠퍼스 안에는 두 개의 건물이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바로 본관과 구() 중앙도서관 건물이다.

 

 

▲ 고려대학교 본관 | 같은 건축가가 설계하였기 때문에 서울 중앙고등학교 본관 건물과 상당히 비슷한 외관을 갖고 있다.

 

▲ 고려대학교 본관 중앙부 탑과 현관 부분

 

 

 

 

현재 고려대학교 재학생들에게 중앙도서관이 어디인지 물어보면 아마도 새로 지은 신관을 가르쳐 줄 것이다. 그러나 사적으로 지정된 건물은 '() 중앙도서관'으로, 현재 대학원 건물로 이용되는 곳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고려대학교의 전신(前身)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이다. 일제강점기에는 ‘3대 사학이라고 하여 서울에 있는 보성(현 고려대학교), 연희(현 연세대학교), 혜화전문학교(현 동국대학교)가 꼽히기도 하였다.

 

 

보성전문학교는 1905년에 구한말 독립운동가인 이용익에 의해 세워졌다가 1932년에 인촌 김성수(1891~1955)가 경영을 인수하면서 크게 발전하기 시작하였는데, 김성수는 동아일보를 창간하고 서울 중앙고등학교를 인수하기도 한 인물이다.

 

김성수는 본래 경복궁 근처인 송현동에 있던 보성전문학교를 오늘날 고려대학교가 있는 안암동으로 옮기면서 새롭게 교사를 지었다. 그것이 오늘날의 문화재가 된 것이다.

 

 

 

2. 건축가 박동진이 설계하다

 

먼저 사적 제285호에 지정되어 있는 고려대학교 본관은 보성전문학교의 본관 건물로 사용하기 위해 1934년에 지어졌다.

 

사실상 오늘날 고려대학교의 토대를 마련한 김성수는 우리나라 1세대 건축가라고 할 수 있는 박동진(1899~1981)에게 당시 보성전문학교의 본관과 중앙도서관의 설계를 맡겼다. 단지 설계를 맡기기만 하지 않고, 김성수와 박동진은 설계부터 완공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에서 끊임없이 상의하였다고 한다. 두 사람은 고려대학교 본관과 중앙도서관뿐만 아니라 서울 중앙고등학교 본관(1937년 완공)도 완성하였다. 이러한 까닭에 서울 중앙고등학교 본관과 고려대학교 본관은 상당히 비슷한 외관을 지니고 있다.

 

 

우선 본관 건물은 1934년에 지상 3층의 고딕풍의 웅장한 석조 건물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화강석을 주재료로 하였고, 건물 중앙부에는 5층 높이의 탑을 세우고 그 아래에 현관을 만들었다. 현관은 튜더식 아치(tudor arch)로 되어 있는데, 독특한 점은 정면 현관의 양쪽 돌기둥에 학교의 상징인 호랑이를 새겼고, 뒤쪽 현관의 돌기둥에는 무궁화를 새겨 민족의식을 강조하였다고 한다. 또한 건물 내부에는 당시로서는 최신식 시설인 수세식 화장실도 만들었다.

 

처음 설계 당시부터 미국과 유럽의 대학 건물들을 많이 참고하였다고 전해지는데, 그런 까닭인지 매우 고풍스러운 멋과 위풍당당한 느낌까지 준다.

 

 

▲ 고려대학교 구 중앙도서관 | 사적 제286호이다.

 

 

 

본관의 동쪽 언덕 위로 올라가면 사적 제286호인 구 중앙도서관 건물이 있다. 이 건물은 1937년에 완공되었으며 본관과 마찬가지로 박동진이 설계를 맡았다.

 

본관 건물과 형식은 비슷한지만, 하늘 위에서 건물을 내려다보았을 때 평면은 자로 되어 있어 중앙부에 탑이 있는 본관과는 달리 남서쪽 모서리에 탑이 세워져 있고, 그 아래로 출입문이 있다.

 

본관처럼 고딕 양식의 고풍스러운 느낌이 드는 건물인데, 언덕 아래의 본관 쪽에서 바라보면 마치 유럽의 유서 깊은 고성(古城)이 떠오른다. 이 건물은 특히 설계 당시에 미국의 듀크대학 도서관을 참고로 하였다고 전해진다. 이 건물은 계속하여 중앙도서관으로 쓰이다가, 중앙도서관 신관을 새롭게 지으면서 현재는 대학원 건물로 쓰이고 있다.

 

 

▲ 미국 듀크대학교 도서관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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