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화여대의 간략한 역사
▲ 이화여자대학교 본관(파이퍼홀) | 등록문화재 제14호
대학교 캠퍼스 안의 근대 건축물을 찾아서, 이번에는 서울시 서대문구 신촌에 있는 이화여자대학교를 찾아가 보았다.
우선 이화여자대학교, 약칭 ‘이화여대’의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자. 현재 우리나라의 명문 여자 대학교로 평가받는 이화여자대학교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 대학교이기도 하다. 이화여대의 역사는 조선 말기인 1886년에 미국의 북감리교 선교사이면서 해외여성선교회를 통해 조선으로 파견된 메리 스크랜튼(M. F. Scranton, 1832~1909) 여사가 서울시 중구 정동에 있던 자택에서 한 여학생을 교육한 것에서 출발하였다.
그 이듬해인 1887년에 고종 황제가 직접 ‘이화학당(梨花學堂)’이라는 교명과 현판을 하사함으로써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여성 교육기관으로 인정을 받았다. 쉽게 말해 국가로부터 공인받은 최초의 근대식 여학교라는 뜻이다.
‘이화’라는 학교 이름은 당시 학당 근처에 있던 흐드러지게 핀 배꽃에서 따왔다는 설과 이화정이라는 정자의 이름에서 따왔다는 설이 있는데, 한마디로 ‘배꽃 같이 순결하고 아름다우며 향기로운 열매를 맺으라’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그후 중등과와 보통과, 고등과가 차례로 생겼으며, 1910년에는 4년제 대학 과정이 신설되어 우리나라 최초의 여대생을 배출하기도 하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이화여자전문학교, 경성여자전문학교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광복 후인 1946년에 종합대학인 이화여자대학교로 인가를 받아 초대 총장으로 김활란이 취임하였다.
▲ 설립자인 메리 스크랜튼 여사 흉상
▲ 초대 총장 김활란 박사 동상
학교 설립 당시에 정동에 있던 교정은 학생 수가 점차 늘어나면서 비좁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날의 위치인 서울시 서대문구 신촌에 새롭게 부지를 마련하고 캠퍼스를 이전하면서 5만5천 평의 캠퍼스 부지에 본관을 비롯한 여러 건물을 지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지난 2008년에는 정문에서 본관까지 이어지는 공간에 ‘이화캠퍼스복합단지(Ewha Campus Complex : ECC)’를 건설하여 이화여대의 새로운 명물이 되었다.
▲ ECC(Ewha Campus Complex ) | 언덕 위 중앙에 보이는 건물이 본관(파이퍼홀)이다.
▲ 본관(파이퍼홀) 쪽에서 내려다본 ECC | 마치 성경에 나오는 '모세의 기적'이 연상된다.
2. 이화여대의 상징, 파이퍼홀
지금부터 살펴볼 근대 건축물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자, 현재는 대학교 본관으로 쓰이고 있는 ‘파이퍼홀’이다.
파이퍼홀은 일제 강점기인 1935년 완성되었는데, 고딕 양식의 석조 건물로 지어졌다. 건물의 설계는 윌리엄 보리스 사무소에서, 시공은 중국인 마종유가, 현장 감리는 보리스사의 한국인 건축가 강윤이 맡았다고 한다.
건물의 이름은 기부자인 미국인 파이퍼 여사(Pffeiffer)를 기념하기 위해 붙여진 것이다. 파이퍼 여사와 그 남편은 당시 미국의 뉴욕에 살던 사업가 부부였다. 부부는 당시 이화여자전문학교에 재직 중이던 선교사 *아펜젤러(Appenzeller, Alice R. 1885~1950)의 요청을 받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한국의 여성 교육을 위해 선뜻 12만 달러라는 거액을 기부하였다고 한다.
*위에서 언급한 아펜젤러는 정동제일교회와 배재학당을 설립한 아펜젤러(H. G. Appenzeller)의 딸이다. 그는 스크랜튼 여사가 세운 이화학당 전문부를 맡아 학교 부지를 신촌으로 옮기면서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장에 취임하였으며, 광복 후에는 이화여대 명예 총장으로 재직하였다.
이렇게 하여 석재와 콘크리트를 이용하여 지은 파이퍼홀은 지상 3층에 반지하가 있는 멋진 건축물로 탄생하였다. 건물의 외벽은 서양의 전통적인 석조 건축 기법인 ‘애슐라(Ashlar) 쌓기’가 사용되었다.
선교사가 세운 학교의 본관답게 건물 중앙부의 맨 위에는 십자가가 새겨져 있으며, 중앙부의 출입문은 중세 유럽의 성당처럼 튜더식 아치로 되어 있다. 출입문 아래로는 반지하로 들어가는 또 다른 출입문이 있다.
파이퍼홀은 6.25 전쟁 때에 일부 파손되었지만 복원을 거쳐 거의 옛날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 본관(파이퍼홀) 중앙부 | 상단에 십자가 문양이 있으며, 출입문은 튜더식 아치로 되어 있다.
▲ 출입문 아래에 반지하로 통하는 또 다른 출입문이 있다.
이화여자대학교 정문 오른쪽에서 시작되는 ECC(Ewha Campus Complex)로부터 일직선으로 시원하게 뻗은 언덕 위에 있어서 더욱 돋보이며, 건물 서쪽에는 초대 총장인 김활란 박사의 동상이 있고 건물 동쪽에는 설립자인 스크랜튼 여사의 흉상이 있다.
전체적으로 석조 건물 특유의 웅장함을 갖추고 있으면서 우아함과 세심함까지 엿볼 수 있는 이 건물은 등록문화재 제14호에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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