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건국대학교의 상징, 구 서북학회 회관(건국대학교 박물관)
▲ 구 서북학회 회관(등록문화재 제53호) | 현재 건국대학교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대학교 캠퍼스 안의 근대 문화유산을 찾아, 이번에는 건국대학교를 찾아가 보았다.
서울시 광진구에 있는 건국대학교 안에는 2개의 건물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먼저 찾아간 곳은 현재 건국대학교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구(舊) 서북학회 회관’이다.
건국대학교 캠퍼스 안에는 학교의 명물인 '일감호'라는 큰 호수가 있다. 일감호 옆에는 호수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학생회관과 청심대라는 쉼터가 있는데, 청심대에서 가까운 곳에 붉은색 벽돌로 된 2층짜리 건물이 바로 등록문화재 제53호에 지정되어 있는 구 서북학회 회관이다.
▲ 1947년 조선정치학관 개교 1주년 기념식 때의 구 서북학회 회관 모습 | 조선정치학관은 오늘날 건국대학교의 전신이다.
이 건물은 1908년에 설립된 서북학회의 건물로 지어졌다. 지어질 당시에 현재 종로구 탑골공원(파고다공원) 서쪽의 낙원상가 뒤쪽, 즉 서울시 종로구 낙원동에 있었다.
여기서 서북학회란 어떤 단체인지 잠깐 알아볼 필요가 있겠다.
서북학회는 1905년부터 1910년 사이에 일어났던 애국계몽운동의 결과로 탄생한 단체이다. 애국계몽운동이란 간단히 말해서 일본의 침략에 맞서 민족의 국권을 회복하고 실력을 기르자는 운동이었다. 이 운동의 결과로 여러 애국 단체가 생겼는데, 그중에서 서우학회와 한북흥학회가 통합하여 서북학회가 탄생하였다.
단체의 설립을 주도한 사람들은 도산 안창호를 비롯하여 이갑, 이동휘, 박은식, 유동열, 최재학 등이었고, 주요 인사들이 대부분 평안도, 황해도, 함경도 등 서북 지방 출신들이었기 때문에 서북학회란 이름이 붙여졌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광복 후에 있었던 반공 극우 단체인 ‘서북청년회’와는 이름이 비슷하지만 전혀 성격이 다른 단체라는 점이다.
서북학회는 1908년부터 국권을 빼앗긴 1910년까지 <서북학회월보>라는 학보를 발간하기도 하였고, 여러 모임을 통해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민족의 실력 양성을 위해 여러 학교와 강습소를 세우기도 하였다. 일제에 의해 1910년에 강제로 해산된 후에는 만주에 독립군 기지를 건설하는 데 기여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서북학회는 독립 운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항일 운동 단체이다.
▲ 중앙에 포치가 있고 그 위로 테라스와 시계탑이 있으며, 반지하가 있는 것이 독특하다.
이 서북학회 회관 건물은 모금을 통해 1908년 11월에 완성된 건물로, 청나라 기술자가 설계하였다고 한다. 완공되자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벽돌로 된 현대식 건물이어서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보성전문학교, 협성실업학교 건물로도 쓰이다가 건국대학교의 설립자인 상허 유석창 박사가 1941년에 매입하였다.
유석창은 광복 직후인 1945년 이 건물에 강습소인 ‘건국의숙(建國義塾)’을 세웠고, 건국의숙은 1946년에 '조선정치학관'으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 건국대학교의 전신(前身)이다.
그후 1977년 종로구 낙원동에 있던 이 건물은 도시 계획으로 철거될 위기에 처했다. 이때 건국대학교는 건물의 자재들을 모두 해체하여 현 건국대학교 캠퍼스로 옮겨서 보관하고 있다가 1985년 현재 위치에 그대로 복원해 놓아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 동국정운(국보 제142호) | 조선 세종 때에 신숙주, 최항, 박팽년 등이 왕명으로 편찬한 우리나라 최초의 운서(韻書)이다. 한자음을 바로잡아 통일된 표준음을 정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 율곡 이이 선생가 분재기(보물 제477호) | 율곡 이이 선생의 형제자매들이 아버지 이원수 사후에 모여 유산을 분배하고 기록한 문서이다.
건물은 붉은색 벽돌과 화강석으로 되어 있고, 지상 2층에 반지하가 있는 것이 독특하다. 건물 중앙에는 작은 포치(현관이 돌출되어 있는 구조)가 있고, 출입문 위로 시계탑과 돔이 있으며 창문은 아치형으로 되어 있다.
현재 지상 1층은 설립자인 상허 유석창 박사 기념 전시실로, 2층은 역사 유물 전시실로 쓰이고 있다. 특히 2층에는 국보 제142호인 <동국정운>과 보물 제477호인 율곡 이이 선생가 분재기가 전시되어 있다.
▲ 건국대학교 설립자 유석창 박사 동상
항상 역사 교과서, 과거사와 관련하여 큰 논란이 일어나는 것이 바로 과거사와 친일에 대한 문제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다수의 사립대학교 설립자나 초대 총장 중에는 친일 행적이 뚜렷히 드러난 사람이 너무나 많다. 고려대(김성수), 연세대(백낙준), 한국외대(김흥배), 중앙대(임영신), 이화여대(김활란), 숙명여대(임숙재), 성신여대(이숙종), 동덕여대(조동식), 덕성여대(송금선), 서울여대(고황경), 상명대(배상명), 추계예술대(황신덕), 인덕대학교(박인덕) 등…….
그에 비하여 건국대학교 설립자인 유석창은 11세 때에 독립투사인 아버지 유승균(劉勝均)을 따라 만주로 건너가 장백현·간도성 등에서 독립운동에 가담하여 21세에 귀국하기까지 활동하였다고 하니 상대적으로 더 돋보일 수밖에 없다.
2. 조선 말기의 독특한 한옥, 도정궁 경원당
▲ 도정궁 경원당
건국대학교 안의 또 다른 문화재는 ‘도정궁 경원당’(서울시 민속자료 제9호)이다. 이 한옥 건물은 조선 후기 철종 때의 왕족인 경원군 이하전(1842~1862)을 위해 제사를 지내던 집이라고 한다.
도정궁(都正宮)은 경복궁 서쪽의 사직단 근처에 있던 저택으로, 본래는 14대 임금 선조의 아버지이자 중종의 7번째 아들인 덕흥대원군(1530~1559)의 저택이다. 이하전은 덕흥대원군의 후손으로, 1849년에 헌종이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자 왕위에 오를 후보로 거론되었다가 철종이 즉위하게 되자 안동 김씨의 미움을 받게 되었다.
당시에는 안동 김씨의 위세가 하늘을 찌를 때였으므로 이하전 외에도 모든 왕족은 안동 김씨의 감시와 견제를 받았고, 그중에는 철종의 할아버지처럼 역모로 몰아 죽인 왕족도 많았다. 이하전 역시 1862년에 김순성 등에 의해 왕으로 추대되어 역모를 꾀하였다는 이유로 제주도에 유배되었다가 사사된 인물이다. 한마디로 안동 김씨 세도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된 왕족이다.
도정궁은 덕흥대원군의 집이었으므로, 선조가 임금이 되기 전 살았던 잠저(潛邸)인 셈이다. 잠저란, 임금이 왕위에 오르기 전 살았던 집을 말한다. (창덕궁 근처에 있는 흥선대원군의 집 운현궁도 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 어린 시절을 보냈던 집이므로 잠저이다.)
본래 도정궁은 부속 건물이 많고 면적도 굉장히 넓은 대저택이었다고 한다. 현재 남아 있는 도정궁 경원당은 도정궁에 있던 여러 부속 건물 중 하나로, 1913년 무렵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안타깝게도 다른 도정궁의 부속 건물들은 오늘날 남아 있지 않다.
위의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이 경원당은 전체적으로 두 채의 큰 건물이 하나로 연결된 ‘ㄱ’자 형태이다. 전통 한옥 양식이 바탕을 이루고 있지만, 포치처럼 돌출된 부분이 있고 아치형의 출입문이나, 이국적인 창틀 모양에서 볼 수 있듯이 곳곳에 서양식 또는 일본식 요소가 접목되어 있는 아주 특별한 형태의 가옥이다. 따라서 조선 말기에서 일제 강점기로 넘어가던 시대의 한옥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문화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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