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효창공원의 간략한 역사
▲ 효창공원 입구 | 사적 제330호이다.
서울시 용산구 효창동, 지하철 6호선 효창공원 입구역과 숙명여대 근처에 있는 효창공원에는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여러 순국열사의 묘가 모여 있다.
효창공원이라는 이름은 조선 시대에 '효창원(孝昌園)'이 있었던 자리에 조성되었기 때문에 붙여졌다. 효창원은 조선의 22대 왕 정조의 맏아들인 문효세자(1782~1786)의 무덤이다. 정조의 장남으로 태어난 문효세자는 두 살 때에 바로 왕세자에 책봉되었으나 불과 5살의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본래 효창공원은 문효세자의 무덤이 있었던 자리였지만, 일제강점기 말기에 효창원은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서삼릉으로 강제로 이장되었고, 공원이 조성되었다.
현재 효창공원은 도심 속의 공원으로 남아 있지만, 효창원이 있었을 때는 소나무가 많이 자라는 숲이 있었다고 한다. 오늘날에도 이곳은 높은 구릉 지대에 속하는데, 언덕 위에 오르면 한강이 한눈에 보일 정도로 경관이 좋았기에 군사적으로도 요충지에 속했다. 이에 따라 효창원을 강제로 이장시킨 일제는 이곳을 ‘구용산고지(舊龍山高地)’라고 부르며 일본군이 머무르며 집결하는 군사 시설로도 활용하였다.
▲ 효창운동장 | 효창공원 바로 옆에 있다.
▲ 효창공원 안의 조형물
▲ 삼의사(三義士)의 묘 입구
▲ 삼의사(三義士)의 묘 |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세 분의 무덤이다. 1946년 김구 선생의 주선으로 이곳에 안장되었다. 맨 왼쪽의 비석이 없는 가묘는 1910년 중국 뤼순 감옥에서 순국한 안중근(1879~1910) 의사의 유해를 찾으면 모시기 위해 마련한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이끌며 독립운동을 주도했던 백범 김구 선생은 1945년 광복 후에 귀국한 뒤, 일제 침략의 교두보였던 이곳에 독립운동가들의 묘역을 조성하고자 하였다. 일제의 군사 시설은 철거되었고, 김구 선생의 뜻에 따라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등 삼의사의 유해가 이곳에 모셔졌다. 이어서 이동녕, 조성환, 차이석 등 임시정부 요인들의 유해도 모셔졌다. 1949년에 백범 김구 선생도 안두희에게 시해된 후에는 국민장을 거친 후 이곳에 유해가 모셔졌다.
따라서 효창공원은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서 가장 핵심적인 분들이 모셔진 아주 뜻깊은 곳이다.
특이한 점은 ‘삼의사의 묘’라고 불리는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의 무덤 옆에 유골이 없는 가묘(假墓)가 하나 있는데, 이 가묘는 현재 유해를 찾지 못한 안중근 의사를 위해 남겨놓은 것이다. 훗날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으면 이곳에 모실 예정이라고 한다.
또한 공원 안에는 효창공원 내에 묘역이 있는 독립운동가 7인(이동녕, 김구, 조성환, 차이석,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의 영정과 위패를 모시고 있는 사당 의열사가 있다. 이곳에서는 매년 임시정부 수립일인 4월 13일이나 환국일인 11월 23일 무렵에 추모 제전을 거행하고 있다.
▲ 이봉창 의사(1901~1932) 동상 | 백범 김구 선생 기념관 아래쪽에 있다.
▲ 임시정부 요인의 묘 |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要人)을 지낸 주석 이동녕, 군무부장 조성환, 비서부장 차이석 선생의 묘이다.
▲ 의열사 | 독립 열사 7인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2. 독립 열사의 숭고한 넋을 간직한 공원
효창공원은 과거 정권들에 의해서 여러 차례 '수난'을 겪어야 했다.
이승만 정권은 1959년에 ‘아세아 축구선수권 대회’를 개최한다는 이유로 이곳에 있는 독립운동가들의 묘를 이장하고 그 자리에 운동장을 만들려고 하였다.
그러나 여론의 강한 반대에 부딪히자 1960년에 묘소들은 그대로 두고 바로 옆에 효창운동장을 만들어 버렸다. 그 어느 곳보다 경건하고 엄숙해야 할 독립운동 열사들의 무덤 바로 옆에 시끄러운 운동 경기장을 지은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더욱 기가 막힌 것은 박정희 대통령 때인 1968년에는 이곳에 골프장을 건립하려고 하였다는 것이다. 이때에도 여론의 강한 반대에 부딪히자 무산되었지만, 대신에 뜬금없이 순국선열들의 묘가 내려다보이는 공원 가장 위쪽에 ‘북한반공투사위령탑’을 세웠다.
동작동의 국립 현충원 못지않은, 아니 그 이상의 '민족의 성지'로서 마땅히 대접받아야 할 효창공원은 이처럼 여러 수난을 겪어야 했다. 마치 오늘날 일본이 과거사를 반성하기는커녕 끊임없이 침략의 역사를 미화하려는 것처럼, 부끄러운 과거사를 덮거나 그 의미를 축소하려는 시도는 우리나라에서도 계속하여 일어났다. 아니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 백범 김구 선생의 묘 입구
▲ 백범 김구 선생의 묘 |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친,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을 지낸 백범 김구 선생(1876~1949)의 무덤이다.
▲ 백범 김구 선생 기념관 | 김구 선생의 묘 왼쪽에 있다.
다행스럽게도 1989년에 효창공원은 사적 제330호에 지정되었다. 이제 문화유산으로서 보호받게 된 것이다. 이후에 백범 김구 선생 기념관이 세워지고, 한때 효창운동장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그 터까지 합쳐서 ‘효창독립공원’으로 조성할 계획까지 세워졌지만 체육계의 반대로 무산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현재 효창공원 안에는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등 삼의사의 묘, 임시정부 요인인 이동녕, 차이석, 조성환의 묘, 그리고 김구 선생의 묘, 백범 김구 선생 기념관, 이봉창 의사 동상, 그리고 순국선열의 7분의 영정을 모신 사당 의열사(義烈祠), 그리고 원효대상 동상 등이 남아 있다.
숙명여자대학교에서 가까운 공원 경내 북동쪽에는 신라 시대의 고승인 원효대사((617~686))의 동상이 있다. 원효대사의 동상이 이곳에 있는 까닭은 분명하지 않지만, 공원 근처의 도로명이 '원효로'인 까닭에 이곳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 원효대사 동상 | 1969년에 효창공원 내에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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