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석사 전경
▲ 부석사 당간지주(보물)
1. 영주 부석사의 역사
경상북도 영주시에 있는 부석사는 아주 오랜 역사를 지닌 절이다. 부석사는 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문무왕 때에 의상 대사(625~702)가 세운 절인데, 의상 대사는 당나라에서 불교를 공부하고 신라로 돌아와 우리나라의 화엄종을 창시한 유명한 승려이다.
부석사의 이름에 들어 있는‘부석(浮石)’이란 말은 공중에 떠 있는 돌이라는 뜻이다. 우리말로는 '뜬돌'이라고 한다. 실제로 지금도 무량수전 뒤에는 부석이라는 아주 큰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는 아래에 있는 바위와 서로 붙어 있지 않고 떠 있어서 ‘뜬돌’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바위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의상 대사가 신라를 떠나 당나라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선묘라는 당나라의 한 처녀가 의상 대사에게 마음을 빼앗겼다고 한다.
그러나 의상은 이미 속세를 벗어나 승려가 된 사람이므로 이들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의상이 당나라에서의 공부를 마치고 신라로 돌아가려고 배에 오르자
선묘가 멀리 바닷가의 절벽 위에서 신라로 떠나가는 의상의 배를 바라보며 이렇게 빌었다고 한다.
“제 몸이 용이 되어 저 배를 무사히 신라에 닿을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러고 나서 선묘는 절벽 위에서 바다로 몸을 던졌다.
다행스럽게도 그 바람대로 그녀는 용이 되었고,
의상이 탄 배가 무사히 신라까지 닿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고 한다.
그후 신라로 돌아온 의상은 지금의 부석사 자리에 절을 짓고 화엄종을 널리 전파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이미 그곳에는 다른 종교를 믿는 무리들이 머물고 있었다.
그들은 의상이 절을 짓도록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
그러자 하늘에서 이를 지켜보던 선묘는 신통력을 발휘하여 아주 큰 바위를 공중으로 띄웠다.
이에 겁은 먹은 무리들이 도망을 쳤고, 의상은 무사히 그곳에 절을 세울 수 있었다고 한다.
그때 선묘가 공중으로 띄웠던 큰 바위가 지금의 부석이고, 이로 인해 절의 이름이 부석사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 부석(뜬돌) | 무량수전 뒤에 있다.
▲ 부석사 무량수전(국보)
▲ 무량수전 배흘림기둥 | 기둥의 가운데 부분이 볼록하다.
▲ 무량수전 앞 석등(국보)
2. 부석사의 국보와 보물
부석사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많은 보물을 간직하고 있다.
우선 부석사의 중심 건물인 무량수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 중 하나이다. 특히 무량수전은 배흘림 기둥(기둥의 가운데 부분이 약간 불룩한 기둥)을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며, 국보에 지정되어 있다.
부석사는 676년 문무왕 때에 세워졌고 무량수전은 1016년 고려 현종 때에 다시 지어졌다고 한다. 특히 무량수전 현판은 고려 공민왕이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다가 1358년 왜구의 침략으로 불에 탔고 1376년 고려 우왕 때에 다시 고쳐 지었다고 한다.
부석사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무량수전은 전면 5칸, 측면 3칸으로 웅장함을 자랑한다. 전각을 떠받치고 있는 여섯 개의 기둥이 그 유명한 배흘림기둥으로 되어 있는데, 배흘림기둥이란 기둥의 가운데 부분을 두껍게 하고 위아래는 가늘게 만든 기둥이다. 멀리서 기둥을 봤을 때 가운데 부분이 유독 좁게 보이는 착시 현상을 보완하기 위함이고 시각적인 안정감을 준다고 한다.
과거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유명한 미술사학자 최순우(1916~1984)는 부석사를 돌아보고 무량수전과 그곳의 우수성을 담은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라는 책을 썼다. 이 책은 베스트셀러로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데 기여했는데, 무량수전의 아름다움과 주변 자연환경과의 조화, 우리 고유의 건축 조형미를 예찬하였다.
▲ 소조여래좌상(국보)
무량수전 앞 석등은 통일 신라 시대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석등으로, 역시 국보에 지정되어 있다. 또한 무량수전 안에는 국보인 소조여래좌상이 있는데, 소조불상은 나무로 골격을 만들고 진흙을 붙여가면서 만든 불상을 말한다. 이 불상은 우리나라의 소조불상 가운데 가장 크고 오래된 작품이라고 한다.
이 밖에도 부석사는 국보인 조사당과 조사당벽화 등 많은 국보와 보물을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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