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광해군이 세운 경희궁
▲ 숭정전 | 경희궁의 정전(중심 건물)로 복원된 건물이다. 본래의 숭정전은 현재 동국대학교 내에 있다.
조선 왕조의 도읍지였던 한양, 즉 지금의 서울에는 조선 시대의 궁궐이 5개나 남아 있다. 바로 조선 왕조의 법궁이자 으뜸 궁궐인 경복궁을 비롯하여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이다. 이 중에서 경희궁은 다른 궁궐에 비해 그 존재조차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편이다.
경희궁을 처음 세운 사람은 제15대 왕이자 훗날 인조반정으로 폐위된 광해군이다.
본래 경희궁이 있던 자리에는 제16대 왕인 인조의 아버지, 즉 정원군의 집이 있었다. 그런데 이곳에 왕기(王氣: 임금이 날 조짐)가 서려 있다고 말을 들은 광해군이 이 집을 빼앗아 그 자리에 궁궐을 짓도록 하고 이름을 ‘경덕궁’이라고 하였다. 경희궁의 처음 이름은 경덕궁이었던 것이다. 경희궁은 광해군 9년인 1617년 짓기 시작하여 1623년 인조 원년에 완성되었다.
인조의 아버지인 정원군은 14대 왕 선조의 5번째 아들로 생모는 인빈 김씨이다. 광해군이 선조의 또다른 후궁인 공빈 김씨 소생이므로 광해군의 이복동생인 셈이다(광해군보다 5살 어림). 정원군은 선조의 뒤를 이어 광해군이 즉위하자 조용히 지내며 외부 활동을 극도로 삼갔다. 그러나 그의 셋째 아들인 능창군이 역모에 가담했다는 누명을 쓰고 귀양을 갔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자신이 살던 새문안 집마저 왕기가 서려 있다는 소문 때문에 광해군에게 억지로 빼앗기자 술과 홧병으로 얼마 안 있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렇게 아버지인 정원군과 동생인 능창군이 억울하게 죽자 이에 원한을 품은 능양군(훗날 인조)이 인조반정에 가담했다는 말이 전해진다.
결국 인조반정(1623년 광해군을 몰아내고 능양군이 왕위에 오른 사건)으로 이복조카인 능양군이 왕위에 오르자 광해군은 완성된 궁궐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왕위에서 물러났다.
결국 왕위는 정원군의 아들인 인조에게 이어졌으니 정원군의 집에 왕기가 서려 있다는 말은 신기하게도 현실이 된 것이다.
인조가 왕위에 오르자 비록 사후이지만 정원군은 정원대원군으로 격상되었다가(대원군은 왕의 아버지라는 뜻) 훗날 왕으로 추존되어 ‘원종’이라는 묘호를 받게 되었다(원종의 무덤이 바로 김포 장릉이다).
*참고: 조선의 왕릉, 김포 장릉 (https://sasavi.tistory.com/74)
▲ 흥화문 | 경희궁의 정문으로, 현재 서울 역사 박물관 뒤에 있다.
▲ 서암 | ‘상서로운 바위’라는 뜻으로, 경희궁 자정전 뒤쪽에 있는 큰 바위이다. 원래 ‘왕암(임금님 바위)’이라고 불렸는데 그 이름 때문에 광해군이 이곳에 경희궁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2. '서궐'로 불렸던 경희궁
광해군을 내쫓고 새롭게 왕위에 오른 인조는 즉위 후에 경희궁에서 정사를 보았으며, 그 후로도 조선의 여러 왕이 이곳에서 머무르며 정사를 보았다. 인조 시대부터 철종 때까지 별궁으로 역할을 맡았는데, 영조 때에 이르러 비로소 경덕궁의 이름은 오늘날과 같은 경희궁으로 바뀌었다.
조선 시대에는 창덕궁과 창경궁을 가리켜 도성의 동쪽에 있는 궁궐이라고 하여 ‘동궐’이라고 불렀고, 경희궁을 도성의 서쪽에 있는 궁궐이라는 뜻에서 ‘서궐’이라고 부를 정도로 주요한 궁궐 중의 하나로서 여겨졌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경희궁은 큰 수난을 겪었다. 궁궐에 있던 수많은 전각들이 대부분 철거되었고, 이곳에 학교가 들어서면서 궁궐로서의 자취를 거의 잃고 만 것이다.
▲ 자정전 | 경희궁의 편전으로, 왕이 신하들과 정사를 의논하던 곳이다.
3. 비교적 조용하고 한산한 궁궐
현재 경희궁은 광화문역 사거리(세종대로 사거리)에서 서쪽에 있는 서울역사박물관 뒤에 있다. 안타깝게도 많은 전각들이 사라지고 궁궐 터도 크게 줄어들어 그 옛날의 웅장한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본래 경희궁의 규모는 한양 도성의 서쪽 대문인 돈의문을 비롯하여 도성 서쪽의 성벽부터 지금의 광화문 사거리에 이를 정도로 광대했으나 고종 때에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경희궁 전각을 해체하여 그 자재를 많이 사용하였고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궁궐의 모습이 대부분 사라지고 규모는 대폭 축소되었다.
경희궁이 있던 자리에는 서울고등학교가 세워졌는데, 1980년대에 강북에 있던 여러 명문 고등학교가 강남으로 대거 이전하면서 이때에 서울고등학교도 서초동으로 이전하면서 본격적으로 경희궁 터의 발굴과 복원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경희궁 터에 서울시교육청과 서울역사박물관 등이 자리 잡고 있어 완전한 복원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러나 경희궁의 중심 건물인 숭정전을 비롯하여 몇몇 중요한 건물들이 복원되어 있고, 다른 궁궐들과는 달리 무료로 입장하여 관람할 수 있다.
특이하게도 숭정전은 현재 동국대학교 서울캠퍼스 안으로 옮겨져 정각원이라는 이름의 불교 법당으로 쓰이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경희궁의 남아 있던 전각들을 매각할 때 불교계에서 사들여 오늘날 동국대학교 안의 법당이 된 것이다. 현재 경희궁 자리에 있는 숭정전은 복원된 건물이고 본래의 숭정전은 다름 아닌 동국대학교 조계종의 소유인 셈이다.
그 존재가 비교적 덜 알려져 있는 탓에 다른 궁궐에 비해 찾는 사람도 많지 않고 비교적 한산한 편이므로 조선 시대 궁궐의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현재 사적 제271호에 지정되어 있다.
▲ 태령전 | 영조의 어진(임금의 초상화)을 모셔 둔 건물이다.
'우리 문화유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선의 궁궐, 덕수궁 (0) | 2023.08.06 |
---|---|
조선의 왕릉, 김포 장릉 (0) | 2023.08.05 |
서울과학기술대학교의 근대 건축물, 다산관 · 창학관 · 대륙관 (0) | 2023.08.02 |
한옥으로 지어진 성당 건축물, 성공회 강화성당 (1) | 2023.08.02 |
자주독립의 상징, 독립문 (0) | 2023.08.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