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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유산

한성 백제 시대의 무덤군, 서울 석촌동 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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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석촌동 백제 적석총 전경

 

 

 

▲ 서울 석촌동 백제 적석총 고분군 입구 | 공원 안에 8기의 백제 초기 무덤이 있다.

 

 

 

 

 

사적 제243호에 지정되어 있는 서울 석촌동 백제 적석총 고분군은 서울시 송파구 석촌동 석촌호수 근처에 있다. 지하철 2호선 잠실역에서도 멀지 않고, 정확한 위치는 지하철 8호선 석촌역에서 배명고등학교 쪽으로 향한 지하차도 바로 위에 있다.

 

 

이 일대에 붙여진 여러 지명과 상호명에는 석촌, 적석, 돌무지, 돌마리등이 들어 있는데, 부르는 이름은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공통점이 있다. 바로 이란 말이 들어간다는 점이다.

 

 

이 일대를 석촌동이라고 부르고 근처의 호수를 석촌호수이라고 부르는 것도 모두 이 고분군에서 유래된 것이다.

 

돌을 차곡차곡 쌓아올려 만든 무덤을 돌무지 무덤이라고 부르고, 한자로는 적석총이라고 한다. 그런 돌무지 무덤이 많은 마을이라고 하여 아주 오래 전부터 이곳을 돌마리라고 불렀다고 한다. 돌마리를 한자어로 바꾸면 바로 석촌(石村)이 된다.

 

 

▲ 제1호분 | 무덤 2개가 남북으로 이어진 쌍분으로, 무덤 내부와 주변에서 토기와 기와, 금귀걸이 등이 출토되었다.

 

 

▲ 제2호분 | 3세기 말에 만든 것으로 보이는 접시와 항아리가 출토되었다.

 

 

 

이곳은 백제 초기의 무덤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한성 백제 시대에 살던 왕과 왕족, 귀족들의 무덤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제 강점기 초창기만 해도 이곳에는 흙무덤 23기와 돌무덤 66기 등 수십 기에 이를 정도로 어마어마한 수의 무덤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는 1970~80년대의 도시 개발로 인해 대부분이 훼손되고 주변의 아파트와 주택 밀집 지역 사이 넓은 공원에 8기만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이곳의 무덤 양식은 크게 고구려 계통의 돌무지 무덤과 움 무덤, 흙무지 무덤 등인데, 이는 이 시기에 이곳에 살았던 백제 사람들의 뿌리가 고구려이거나, 이들이 고구려에서 이동해 왔음을 짐작하게 해 준다.

 

 

 

▲ 제3호분 | 석촌동 고분군에서 가장 큰 규모로, 길이가 동서남북으로 약 50미터에 이른다. 1980년대 중반까지 무덤 위에 여러 채의 민가가 있어서 높이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최소 4.5미터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무덤의 형식으로 보아 4~5세기 백제 왕릉으로 여겨지는데 일부에서는 조성 시기와 규모로 보아 백제 초기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근초고왕의 무덤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 제4호분 | 본래 진흙을 다져 쌓은 흙무지 무덤이었다가 겉을 돌무지 무덤으로 바꾼 것으로 확인되었다.

 

 

▲ 제5호분 | 이 고분군에서 형태가 가장 잘 보존된 봉토분으로, 지름 17미터 높이 3미터의 원형 모양이다.

 

 

▲ 내원외방형 돌무지 무덤 | 본래 직사각형의 계단식 돌무지 무덤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 제2호 움무덤 | 땅을 파서 움을 만들고 그 안에 널을 넣어 묻은 움무덤 양식으로, 돌무지 무덤보다 먼저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 제3호 움무덤 | 직사각형의 움무덤으로, 원래 있던 움무덤을 방수 시설로 덮고 그 위에 재현한 모습이다.

 

 

 

 

이 일대는 백제의 초기 도읍지였던 한성과 관련이 있다.

왜냐하면, 이곳에서 가까운 곳에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이 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백제의 7백 년 역사 중에서 우리가 대표적으로 알고 있는 공주와 부여 시대는 약 200년에 불과하고 나머지 5백 년의 역사는 한성 백제의 시대이다.

여기 백제 적석총 고분군과 몽촌토성, 풍납토성이 모두 당시 한성백제 시대의 중요한 유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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