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직단 | 사적 제121호에 지정되어 있다.
▲ 홍살문 | 제단 주변을 둘러싼 담장에 네 방향으로 홍살문이 나 있다.
▲ 사직단 담장 | 홍살문이 설치된 두 겹의 담장으로 사방이 둘러싸여 있다.
우리는 흔히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역사 드라마에서 신하들이 왕에게 이런 말을 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전하, 종묘사직이 위태롭습니다.”
여기에서 ‘종묘사직’이란 국가나 왕조 그 자체를 뜻한다.
종묘는 역대 왕들의 영혼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고, 사직은 토지와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인 사직단을 말한다. 이렇듯 종묘와 사직은 국가와 같은 뜻으로 쓰일 만큼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조선 왕조를 세운 태조 이성계도 한양에 수도를 정하고 가장 먼저 경복궁과 함께 종묘와 사직단을 만들도록 하였다. 궁궐의 왼쪽에는 종묘를, 오른쪽에는 사직단을 만드는 것이 당시의 법도였으며, 국가의 근본을 세우는 일과 마찬가지였다.
이것을 ‘좌묘우사(左廟右社)’라고 하는데, 궁궐을 중심으로 하여 남쪽을 바라봤을 때 종묘를 궁궐의 좌측에 놓고 사직단을 궁궐의 우측에 두는 원칙을 말한다. 옛날 중국에서부터 시작되어 고대에 도성의 주요 건물을 배치하는 원칙 중의 하나로 <주례(周禮)>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 원칙은 조선왕조뿐만 아니라 고려왕조, 그리고 중국의 역대 왕조에서도 지켜진 원칙이다. 오늘날로 치면 도시계획의 전형이라고도 볼 수 있다.
▲ 사직단 정문
현재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공원 안에 있는 사직단은 조선 시대에 토지와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토지의 신인 ‘사(社)’와 곡식의 신인 ‘직’(稷)을 합하여 사직(社稷)이라고 하였는데, 사직단(社稷壇)에서는 왕이 직접 한 해 농사의 풍년을 빌면서 제사를 지냈다. 또한 가뭄이 오랫동안 계속되거나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도 이곳에서 제사를 지내기도 하였다.
사직단은 담장이 두 겹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담장의 네 방향으로 홍살문이 세워져 있다. 토지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단(社壇)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직단(稷壇)이 각각 따로 있다.
▲ 오늘날의 사직단
▲ 정사각형 모양의 단이 두 개 있는데, 각각 토지와 곡식의 신을 위한 것이다.
사직단에서 거행하는 제사는 조선 왕조 500년 동안 이어져 왔지만 일제 강점기에 폐지되었다. 게다가 일제는 1921년 이곳에 공원을 만들어서 사직단을 크게 훼손시켰다. 1980년대부터 사직단을 정비하고 보수하는 작업이 진행되어 일부 제단과 주변이 복원되었으며, 현재 사적 제121호에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우리 문화유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양 도성의 남쪽 대문, 서울 숭례문 (0) | 2023.08.08 |
---|---|
대한제국의 상징, 환구단 (0) | 2023.08.08 |
우리나라 최대의 왕릉군, 동구릉 (0) | 2023.08.07 |
한성 백제 시대의 무덤군, 서울 석촌동 고분군 (0) | 2023.08.06 |
조선의 궁궐, 덕수궁 (0) | 2023.08.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