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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유산

흥선 대원군의 집이자 고종의 잠저, 운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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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현궁 전경 | 사적 제257호에 지정되어 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운현궁(雲峴宮)은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 대원군(1820~1898)이 살았던 저택이다. 그리고 그의 아들이자 조선의 제26대 왕인 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집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운현궁은 흥선 대원군의 집이자 고종의 잠저(潛邸: 왕세자가 아닌 사람이 왕위에 오르기 전 살았던 집)인 셈이다.

 

 

흥선 대원군은 아들인 고종이 12살의 나이에 왕위에 오르자, 어린 왕을 대신하여 섭정(왕을 대신하여 나라를 다스림)을 시작하였다. 무려 60여 년 동안 이어졌던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 등의 세도정치가 끝나고 바야흐로 흥선 대원군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흥선 대원군은 무려 10년 동안 정권을 잡고 운현궁에 머무르며 여러 가지 개혁 정책을 실시하였다. 자연스럽게 흥선 대원군의 섭정 기간 동안 운현궁은 조선의 중심 그 자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흥선 대원군 이하응(1820~1898)

 

 

 

운현궁의 위치는 창덕궁과 경복궁에서도 멀지 않다. 운현(雲峴)이라는 이름은 운현궁 바로 앞에 있는 서운관(書雲觀) 근처의 언덕을 운현(雲峴)이라고 부른 데에서 비롯되었다. 서운관은 관상감의 다른 이름으로, 천문과 지리 등을 관장하는 기관이었다. 지금도 운현궁에서 길 하나 건너 현대그룹 사옥 바로 앞에 관상감 천문대가 남아 있다.

 

흔히 운현궁을 궁궐로 잘못 아는 경우가 많은데, 운현궁은 궁궐이 아니고 왕이 살았던 잠저이기 때문에 ()’ 자를 붙여 높여 부른 것이다. 같은 예로 강화도령 철종이 살았던 강화도의 용흥궁(龍興宮)이 있다. 이와 같이 궁궐이 아니지만 왕이 한때 살았던 잠저이거나 왕족이 사는 집을 높여 불러서 ()’을 붙이기도 한다.

 

 

본래부터 큰 규모를 지닌 저택은 아니었지만 고종이 왕위에 오르고 흥선 대원군이 섭정을 하면서 운현궁의 규모는 점점 커져서 한때는 마치 임금이 사는 궁궐과 맞먹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당시에 비해 크게 줄어서 일부 건물만 남아 있다.

 

 

 

 노안당

 

 

 

 

운현궁의 안쪽으로 들어가면 노안당, 노락당, 이로당 등의 건물이 있다. 모두 흥선대원군이 섭정을 했던 시기에 지어졌으며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곳이다.

 

 

노안당은 운현궁의 사랑채로 쓰였던 곳으로, 흥선 대원군이 국가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했던 곳이다. 노락당은 운현궁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로, 이곳에서 명성황후가 고종과 혼인을 하기 전에 왕비 수업을 받기도 하였다. 이로당은 운현궁에서 가장 안쪽에 있으며 여자들이 사는 안채였다.

 

 

현재 이로당 왼쪽에 자리 잡은 유물 전시관에는 흥선 대원군과 운현궁에 관련된 다양한 유물을 전시하고 있어서, 조선 말기의 시대적 상황과 왕실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노락당

 

 

▲ 이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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