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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유산

대한제국의 상징, 환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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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궁우 | 환구단의 부속 건물로, 화려한 팔각 지붕을 가진 3층 건물이다.

 

 

 

 

 

현재 서울시 중구 소공동에 있는 환구단은 대한제국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문화유산이며,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외세의 침략이 절정에 달했던 조선 말기, 조선의 제26대 왕인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다가 나라의 자주독립을 주장하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자 고종은 자주 국가로서의 면모를 세계만방에 알리기 위해 경운궁(현재의 덕수궁)으로 돌아와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정하고 스스로 황제가 되었다.

 

 

 

▲ 석조대문 앞의 돌계단​

 

 

▲ 석고(돌로 만든 북) | 돌로 만든 북이란 뜻으로, 측면에 화려한 용 무늬가 새겨져 있다.

 

 

 

환구단은 1897년 고종의 황제 즉위식과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이곳에는 원래 중국 사신들을 접대하던 남별궁(南別宮)이 있던 자리이다.

 

 

본래 환구단이란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곳으로, 원구단이라고도 한다. 예로부터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이라는 말이 전해지는데 이것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뜻이다. 옛날 동아시아인들의 세계관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지만 건축물에도 적용이 되곤 했다. 이 영향으로 중국과 우리나라에서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단을 둥근 형태의 팔각정 모양으로 짓곤 했다.

 

 

1897년 고종은 대한제국의 황제에 즉위하면서 제국의 예법에 맞게 환구단을 건설하였다. 다시 말해 환구단은 대한제국의 자주독립을 대내외에 알린 상징적인 곳이다.

 

 

 

 환구단 정문

 

 황궁우 난간에 조각되어 있는 해치상

 

 

 

 

환구단은 원래 중국의 역대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냈던 곳이다. 하늘에 제사를 지낼 수 있는 자격은 오직 왕 중의 왕황제만이 가진 권한이었기 때문이다.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이제 왕이 아닌 황제의 자리에 올랐음을 보여주기 위해 환구단을 만든 것이다. 아관파천으로 러시아 공사관에 일년 동안 머물렀다가 경운궁(덕수궁)으로 환궁한 고종은 환구단으로 나아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황제에 즉위했다

 

 

1897년 환구단은 돌로 된 3층의 단을 가지고 중앙 부분 위로 금색을 칠한 원추형의 지붕이 있는 제단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2년 뒤인 1899년에 환구단 옆에 화강암으로 된 기단 위에 세워진 3층의 팔각 지붕을 가진 건물을 만들었으니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황궁우이다. 1902년에는 황궁우 앞에 돌로 된 북(석고)을 만들었다.

 

그러나 외세의 침략으로 이미 국운은 기울어진 지 오래되었다. 결국 대한제국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1910년 일제의 의해 완전히 국권을 빼앗겼다. 당연히 일제는 대한제국의 상징물이자 황제국을 상징하는 환구단을 철거하였고 이때 환구단을 비롯한 많은 건물들이 훼손되었다. 그리고 환구단이 있던 자리에는 '조선 경성 철도 호텔'이 들어서게 되었다.

 

현재는 3층의 팔각 지붕을 가진 건물인 황궁우와 돌로 만든 북인 석고, 환구단의 정문, 석조대문 등이 남아 있다.

 

 

 

▲ 황궁우와 환구단의 옛 모습 | 현재 웨스틴조선호텔 일대가 환구단이 있던 자리이다. 맨 아래 사진의 왼쪽에 있는 팔각지붕이 황궁우이고 오른쪽의 원추형 지붕이 환구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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