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 러시아 공사관 | 사적 제253호에 지정되어 있다.
구 러시아 공사관은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 덕수궁 뒤편에 남아 있는 옛 러시아 공사관 건물로, 사적 제253호에 지정되어 있다.
1876년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자 불평등 조약인 강화도 조약이 체결되면서 서양 열강에 굳게 닫혀 있던 조선의 문호가 개방되기 시작했다.
1883년 조미 수호 통상조약이 체결되면서 미국 공사관이 정동에 들어섰고, 이어서 영국, 러시아, 프랑스, 독일 등 제국주의 열강들의 공관들도 들어서면서 정동은 당시 우리나라에 들어온 외국인들의 주요 활동 공간이 되었다. 또한 배재학당, 이화학당을 비롯한 교육기관과 근대적 건물들이 들어섰으며 오늘날에도 그 흔적이 정동 곳곳에 남아 있다.
구 러시아 공사관도 러시아와 통상 조약을 맺으면서 정동에 세워졌다. 건물은 1885년에 착공되어 1890년에 준공되었다.
▲ 구 러시아 공사관 | 현재 탑 부분만 남아 있다.
건물을 설계한 사람은 러시아인 사바틴(1860~1921)이다. 본래는 르네상스풍의 벽돌로 된 2층의 건물과 한쪽에 3층짜리 탑이 있는 구조였다. 또한 탑의 동북쪽에는 지하실이 있어 덕수궁까지 연결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6ㆍ25 전쟁 때에 심하게 파괴되어 현재는 탑 부분만 남아 있다.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곳이 구 러시아 공사관이다. 구 러시아 공사관은 아관파천(俄館播遷) 의 현장으로서 역사적 의의가 높다.
1895년 일본이 고종의 비인 명성황후를 시해한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신변의 위험을 느낀 고종은 1896년 2월에 이곳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여 이듬해 덕수궁(당시 경운궁)으로 환궁하기까지 약 1년간 머물렀다. 이 사건을 아관파천이라고 한다. 아관파천 이후 고종은 이범진, 이완용 등의 친러 내각이 조직되었으며 러시아는 조선에 채굴권과 채벌권 등 각종 이권을 요구하였다. 이듬해인 1897년 2월에 고종이 덕수궁으로 환궁하여 대한제국을 선포할 때까지 러시아의 내정 간섭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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