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양 도성의 북쪽 대문인 숙정문
태조 이성계가 고려왕조를 무너뜨리고 새롭게 조선왕조를 창업하고 나서 도읍을 개경에서 지금의 서울인 한양으로 옮긴 후 도읍의 경계를 둘러싼 성을 쌓았으니, 이것이 오늘날 서울 성곽으로 불리는 한양 도성이다.
한양 도성에는 동서남북 방향으로 각각 4개의 대문과 4개의 소문을 만들어 도성을 출입할 수 있도록 하였다. 4개의 대문은 가장 널리 알려진 숭례문(남대문)을 비롯하여 흥인지문(동대문), 돈의문(서대문), 그리고 북쪽 대문인 숙정문이다.
이중에서 일제 강점기에 완전히 사라진 돈의문을 제외하고 숭례문과 흥인지문은 도심에 위치해 있어 서울 시민 누구나에게나 익숙한 문이다. 그러면 북쪽 대문인 숙정문은 어떨까? 서울 시민 중에도 숙정문이 무엇인지,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 말바위 안내소에서 바라본 북악산
한양 도성의 북대문에 해당하는 숙정문은 경북궁 뒤에 자리잡고 있는 북악산 동쪽의 높은 고갯마루에 있다. 북악산은 옛날에 '백악산'으로도 불렸으며, 풍수지리상 조선왕조의 정궁인 경복궁의 주산에 해당한다. 이 산은 경복궁의 북쪽, 현재의 종로구 삼청동에 있다.
한양 도성은 4개의 산(북악산, 인왕산, 낙산, 남산)을 이어서 쌓았다. 이 네 개의 산을 ‘내사산(內四山)’이라고 불렀는데 당연히 현재의 서울과 600년 전의 조선의 도읍 한양은 그 범위가 달랐다. 내사산 외에도 외사산(外四山)이라고 불린 4개의 산이 있는데, 외사산은 북쪽의 북한산, 서쪽의 덕양산(행주산), 남쪽의 관악산, 동쪽의 용마산(또는 아차산)이다.
4개의 대문 중에서 숭례문, 흥인지문, 돈의문이 비교적 평지에 지어져 있는 데 비해, 숙정문은 비교적 높고 깊은 산속에 있는 탓에 눈에 띄지 않고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이런 이유로 조선 시대에도 사람의 왕래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실질적으로 성문의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이다. 숙정문의 본래 이름은 처음에 '숙청문'이었으나, 어느 시기에 '숙정문'으로 바뀌었다. 이름이 바뀐 시기는 명확하지 않다.
게다가 1413년 풍수지리학자였던 최양선이 풍수지리상 북대문인 숙정문과 북소문인 창의문을 닫아 놓아야 한다고 상소를 올린 뒤로는 이곳에 소나무를 심어 통행을 금지하고 문을 아예 닫았다고 한다. 예외적으로 나라에 가뭄이 들면 비가 오기를 바라면서 문을 열기도 하였다. 북쪽이 음양오행 가운데 물을 상징하는 음(陰)에 해당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1968년 1ㆍ21 사태 이후에는 청와대의 경비를 위해 일반인의 접근을 막았다가, 2006년부터 일반에 다시 개방하기 시작하였다. 현재의 숙정문은 1976년에 복원한 것이다.
▲ 숙정문
숙정문으로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하나는 부암동에 있는 북소문인 창의문에서 시작하여 시계 방향으로 북악산 정상 쪽으로 향해 넘어가는 방법이다. 다른 방법은 이와는 반대 방향으로 북악산 동쪽에서 시작하여 시계 반대 방향으로 북악산 쪽으로 올라가는 코스를 택하는 것이다.
인근에 도로가 없는 숙정문으로 가장 편하고 빠르게 갈 수 있는 방법은 성균관대학교 후문 쪽에 있는 와룡공원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지하철 3호선 안국역에 내려서 2번 출구로 나와 마을버스를 타고 와룡공원이나 성균관대학교 후문에서 내린다. 이렇게 도착한 와룡공원에서 안내판을 따라 북쪽으로 말바위 안내소를 찾아간다. 말바위 안내소에서 신분증을 제시하고 약 5분 정도만 올라가면 바로 숙정문을 볼 수 있다.
▲ 와룡공원(성균관대학교 후문)에서 말바위 안내소로 향하는 길에 이어진 한양 도성 성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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