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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미술가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그린, 들라크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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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젠 들라크루아(1798~1863)의 자화상

 

▲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프랑스에서 일어난 ‘7월 혁명을 배경으로 그린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들라크루아의 대표작이자 프랑스 혁명을 주제로 한 그림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들라크루아는 자유를 위해 일어선 시민들과 이들을 이끄는 여인의 모습을 통해 숭고(崇高)한 혁명의 정신을 나타내고자 하였다.

 

 

 

1789년 프랑스에서 시작된 대혁명은 세계사(世界史)를 뒤흔든 중요한 사건이다. 혁명으로부터 비롯된 자유와 저항, 시민 정신이 19세기 내내 유럽 전체를 지배하였고, 계속하여 이어졌던 1830년의 7월 혁명, 1848년의 2월 혁명, 그리고 파리 코뮌까지 혁명의 열기는 자연스럽게 당시의 모든 예술 분야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 시기에 새롭게 일어난 예술의 흐름이 '낭만주의'였다. 낭만주의 화가들은 고전주의의 정형화된 방식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상상력을 발휘하여 보다 산뜻하고 생생한 색채로 그림을 그리고자 하였다. 그들은 화려한 색채를 이용하여 신화의 내용이나 상상 속의 세계를 마음껏 그리기 시작하였는데, 이러한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화가가 바로 들라크루아이다.

 

 

 

▲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

 

 

▲ <단테의 배>

 

 

 

 

들라크루아는 일찍부터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러 예술가들과 친분 관계를 맺고 그들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같은 낭만주의 화가이자 선배인 제리코(1791~1824), 폴란드를 대표하는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쇼팽(1810~1849), 그리고 작가 조르주 상드(1804~1876)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그리하여 인간의 동작을 경쾌하고 생생하고 표현하고, 강한 색채와 명암의 대비를 즐겨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는 평소에 자연이 바로 나의 사전이다.’라고 말할 만큼 자연 속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으며, 종종 상상의 세계 속에 있는 인간의 위대한 모습을 그리기도 하였다.

 

 

▲ <모로코의 술탄과 그의 사람들>

 

 

▲ <알제리의 여인들>

 

 

 

 

이때까지 들라크루아의 작품들은 대부분 당대(當代)의 사건이나 신화, 고전 작품을 배경으로 한 것이었다. 그런데 34살 때 떠났던 북아프리카 여행은 그의 작품 세계를 크게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되었다.

 

 

보다 다양한 색채를 찾고 있던 들라크루아에게 프랑스와는 전혀 다른 모로코, 알제리는 강한 인상을 심어 주기에 충분하였다. 그곳은 난생 처음 보는 이국적인 풍토(風土)와 신비한 옷차림의 사람들, 그리고 강렬한 태양 아래 펼쳐지는 경관(景觀)들로 가득했다. <모로코의 술탄과 그의 사람들><알제리의 여인들> 같은 작품은 이때의 영향으로 그려진 것이다.

 

 

 

▲ <히오스 섬의 학살>

 

 

그는 일생에 걸쳐 풍경화, 역사화, 초상화, 정물화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왕성한 작품 활동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말년까지 지나치게 작품 활동에 몰두한 나머지 건강을 잃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들라크루아는 그가 활동하던 당시에는 미술계의 거물이었던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1780~1867)의 맞수로서 평가받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자크 루이 다비드(1748~1825)로 대표되는 고전주의 회화 양식을 허물고, 회화의 새로운 영역인 낭만주의를 개척한 위대한 화가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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