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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유산

연산군 묘와 정의공주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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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산군 묘 | 왼쪽이 연산군의 묘, 오른쪽이 부인 신씨의 묘이다.

 

​▲ 연산군 묘 | 곡장 뒤에서 바라본 모습. 사진 오른쪽이 연산군의 묘이다.

 

 

​▲ 묘역 전경 | 가장 위쪽에 있는 것이 연산군 부부의 묘이다.

 

 

 

연산군 묘는 조선의 제10대 임금이었던 연산군과 부인 신씨 등이 안장된 묘역이다. 사적 제362호에 지정되어 있으며 서울시 도봉구 방학동에 위치해 있다

 

 

연산군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대표적인 폭군으로 알려져 있다. 연산군의 재위 기간은 1495년부터 1506년까지 약 11년인데, 조선 왕조에서 광해군과 함께 반정으로 왕위에서 쫓겨나 의 칭호를 받은 두 명의 임금 중 하나이다.

 

 

1506년에 일어난 중종반정(연산군을 왕위에서 몰아내고 연산군의 이복동생인 진성대군(중종)이 왕위에 오른 사건)으로 왕위에서 쫓겨나 강화도로 유배되어 지내다가 몇 달 후 30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그 후 7년이 지나 부인 신씨의 요청으로 묘소를 이곳으로 옮겼다. (1513)

 

 

왕위에서 쫓겨났기 때문에 왕릉이 아닌 대군(왕자)의 무덤 형식으로 세워졌으며, 곡장(담장)과 혼유석, 장명등, 문인석, 재실 등이 간소하게 갖추어져 있어서 조선 전기의 석물 조형 양식을 살펴볼 수 있다

 

연산군과 그의 부인의 묘 아래에는 궁주 조씨(태종의 후궁) 및 연산군의 사위인 능양위 구문경과 딸의 무덤이 함께 있다.

 

 

 

▲ 정의공주 묘

 

 

 

정의공주 묘는 연산군 묘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버스 정류장이 있는 길가에 바로 인접해 있다.

 

 

정의공주는 어떤 인물일까? 정의공주(1415~1477)는 조선 제4대 임금인 세종대왕의 둘째 딸로, 어머니는 소현왕후 심씨이다. 5대 임금인 문종의 누이동생이자 제7대 임금인 세조의 누나이다.

 

 

정의공주는 1428년에 13세의 나이로 관찰사였던 안망지의 아들인 안맹담과 혼인하였는데 남편인 안맹담은 1462년에 세상을 떠났다.

 

정의공주는 남편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지장보살본원경> ,,하권을 간행하였는데, 이 책은 현재 보물 제966호에 지정되어 있다. 정의공주와 관련된 흥미로운 사실은 <죽산안씨대동보>에 훈민정음 창제와 관련된 기록이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 서울시 도봉구 방학동 산 63번지 북한산 둘레길 코스에 있는 정의공주 묘역에는 정의공주와 남편인 안맹담의 묘가 함께 안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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