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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유산

한양 도성의 동쪽 대문, 흥인지문(동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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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산 쪽에서 바라본 흥인지문(동대문)

 

 

 

 

오늘날 많은 쇼핑타운이 모여 있어 밤늦게까지 외국인 관광객이 넘쳐나는 동대문 시장에는 동대문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흥인지문(興仁之門)'이 있다. 흥인지문은 대한민국 보물 제1호에 지정된 조선 시대의 성문이다.

 

 

한양 도성의 동쪽 대문으로 지어진 흥인지문은 태조 5년인 1396년에 한양 도성을 쌓으면서 처음 지어졌다. 그 후 단종 1년인 1452년에 보수하였으며, 조선 말기인 1896(고종 6)에 이르러 전반적으로 개축이 이루어졌다. 따라서 현재의 흥인지문은 조선 후기의 건축물이라고 볼 수 있다.

 

 

흥인지문(興仁之門)이라는 이름에 ()’자가 들어가는 것은 유교에서 말하는 오상(五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에 따른 것이다.

 

 

유학에서는 변하지 않는 인간의 다섯 가지 성품이 있다고 본다. 그것이 바로 오상으로, 여기서 ()’은 어질다는 뜻이다. 흥인지문(興仁之門, 동대문), 돈의문(敦義門, 서대문), 숭례문(崇禮門, 남대문), 그리고 북쪽 대문인 숙정문의 본래 이름인 홍지문(弘智門, 북대문)의 이름에는 각각 인의예지(仁義禮智)가 들어가고, 마지막으로 보신각(普信閣, 종루)()’자가 들어간다. 이처럼 한양 도성을 지을 때는 유교를 바탕으로 문 이름 하나에도 심오한 뜻을 담아 지었던 것이다.

 

 

 

다른 4대문의 이름은 세 글자인 데 비해, 흥인지문은 네 글자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풍수지리에 따르면 한양 동쪽의 기가 약하다고 하여 그 기운을 보충하기 위해 네 글자로 지은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흥인지문 근처에는 청계천이 흐르고 전체적으로 지반이 무르고 약하였다고 한다. 실제로 장마가 들거나 홍수가 일어나면 흥인지문까지 물이 찼다고 한다. 또한 한양 도성을 둘러싼 내사산(북악산, 인왕산, 남산, 낙산) 중에서 흥인지문 동쪽으로 이어진 낙산이 가장 낮고 기운이 약하다고 하여 문 이름에 ()’ 자를 하나 더 넣어 네 글자로 만들었다고 한다.

 

 

▲ 동쪽에서 바라본 흥인지문 | 도성의 다른 문과 달리 옹성을 갖추고 있다. 

 

 

 

전체적인 성문의 모습과 크기는 숭례문과 매우 유사하다. 그러나 가장 큰 차이점은 문 밖으로 반달 모양의 옹성을 갖추고 있는 점이다. 이것은 1869년에 흥인지문을 개축하면서 만든 것이다.

전체적으로 정면 5, 측면 2칸의 다포계(多包系) 형식의 우진각지붕을 가진 거대한 건물로서 조선 후기의 건축 양식을 잘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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