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릉
서울시 성북구 석관동에 위치한 의릉은 조선의 제20대 임금 경종과 그의 계비 선의왕후 어씨를 모신 왕릉이다. 사적 제204호에 지정되어 있다.
경종은 숙종의 아들로, ‘장희빈’으로 잘 알려져 있는 숙종의 계비 희빈 장씨의 아들이다. 그는 아버지인 숙종의 대를 이어 왕위에 올랐지만 병약하고 자손이 없어 왕위에 오른 이듬해인 1721년에 이복동생인 연잉군(훗날 제21대 임금 영조)을 세제(世弟)로 봉하였고 즉위 4년 만인 37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선의왕후 어씨(1705~1730)는 함원부원군 어유구의 딸로, 숙종 44년인 1718년에 세자빈이 되었고, 경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가 되었으며 자손이 없이 26세에 세상을 떠났다.
아주 흥미로운 사실은, 의릉이 있는 이 일대, 즉 천장산 줄기가 뻗어 있는 이 부근은 예로부터 풍수지리상의 명당으로 손꼽히던 곳이다. 그래서인지 산 이름도 천장(天藏, 하늘이 숨긴 곳)이다.
‘하늘이 숨겨 놓은 명당’으로 알려진 탓인지 일대에는 조선 왕족의 무덤이 많이 들어섰다.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 윤씨의 묘도 처음에는 이 부근에 있었다. (현재의 경희대학교 병원 자리에 있었음.)
연산군은 사약을 받고 폐비가 된 어머니를 '제헌왕후'로 추존되고 무덤도 회릉(懷陵)으로 격상시켰으나, 연산군이 폐위된 후 이 무덤은 다시 ‘회묘’로 격하되었다. 그래서 '회묘가 있던 터'라는 뜻에서 회기(懷基)라는 말이 ‘돌아온 터(回基)’라는 뜻으로 바뀌면서 이 일대가 ‘회기동’이란 이름으로 남아 있다. 회릉(정확히 말하면 회묘)은 1969년에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서삼릉(西三陵)으로 이장되었다.
또한 을미사변으로 시해된 명성황후의 무덤도 남양주시의 홍유릉으로 합장되기 전까지 이 부근에 있었다. (현재 영휘원(고종의 계비인 순헌귀비 엄씨의 묘)과 숭인원(영친왕의 아들 이진의 묘) 옆의 '홍릉숲'에 있었으며, 천장산의 남쪽 줄기에 해당한다.)
▲ 의릉 안내도 | 석관동 천장산 기슭에 조성되어 있다.
의릉은 경종과 선의왕후의 봉분이 따로 있는 쌍릉(雙陵)인데, 특이한 점은 보통의 다른 쌍릉 양식의 능과는 달리 왕과 왕비의 봉분을 좌우로 놓지 않고 앞뒤로 나란히 배치하였다는 점이다. 왕은 위쪽, 왕비는 아래쪽에 모신 것이다. 그리고 뒤에 있는 왕의 봉분 뒤에만 곡장(굽은 담장)을 둘렀다.
이러한 양식은 영릉(효종과 인선왕후 장씨의 능)에서 처음 나타난 것으로, 풍수지리에 따라 만든 것이라고 한다. 의릉은 전체적으로 다른 조선 왕릉에 비해 규모가 간소한 편이며 능역의 넓이도 넓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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