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말기의 보신각
▲ 오늘날의 보신각
서울시 종로구 종로2가에 위치한 보신각은 본래 조선 시대 한양 도성의 한가운데에 있던 종을 달아 두던 전각이다. 이 일대에 남아 있는 종각이라는 지명이 바로 이 보신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종로(鐘路)’라는 이 일대의 지명도 종각이 있는 거리라는 뜻에서 붙여진 것이다.
조선 왕조를 창업한 직후인 1398년에 처음으로 한양 도성 안에 종을 매달아 두는 종루가 현재의 인사동 입구인 청운교 부근에 생겼다. 당시 종루는 2층의 누각 건물이었는데, 인정과 파루에 각각 종을 울려서 도성의 문을 닫고 열었다.
지금으로 치면 저녁 10시 무렵인 인정(人定)에는 28번을 종을 울리고, 새벽 4시 무렵인 파루(罷漏)에는 33번을 종을 울려서 시각을 알렸던 것이다. 인정과 파루에 종을 치는 행위는 일종의 ‘통행금지 제도’였다.
바꿔 말하면 한양 도성에서 하루의 시작과 끝을 알리기 위한 종을 매달아 놓은 곳이 바로 종루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 종루는 임진왜란 때에 파괴되었다.
광해군 때인 1619년에 종각을 짓고 다시 종을 매달았는데, 이때 세운 종각은 그 전에 2층 건물인 종루가 아닌 1층 건물인 종각이었다. ‘각’은 보통 1층 건물을 뜻하며, ‘누’는 2층 건물을 뜻한다.
보신각이라는 이름은 1895년(고종 32년)에 종각에 ‘보신각’이라는 편액이 걸린 이후에 붙여졌다. 이때 종에도 '보신각종'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보신각은 6.25 전쟁 때에 다시 파괴되었다가 1980년에 다시 2층 건물로 복원되었다. 굳이 따지자면 현재 보신각은 2층 건물이므로 ‘보신각’이 아닌 ‘보신루’가 맞다.
현재 보신각에 달려 있는 종은 1986년에 새롭게 만든 종으로, 새해 첫날 타종 행사 때에 쓰인다. 본래 보신각에 달려 있던 종은 1468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현재 보물 제2호에 지정되어서 서울시 용산구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경내에 따로 보관되어 있다.
▲ 국립중앙박물관 경내에 있는 보신각종(보물 제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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