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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유산

우리나라 유일의 고구려 석비, 충주 고구려비​(중원 고구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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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주 고구려비 전시관

 

▲ 충주 고구려비 전시관 내부

 

 

▲ 충주 고구려비 앞면

 

 

충청북도 충주시 가금면 용전리 입석 마을에 있는 충주 고구려비는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유일한 고구려의 돌비석으로, 국보 제205호에 지정되어 있다.

 

 

충주 고구려비는 오랫동안 ‘중원 고구려비’라는 이름으로 교과서에 실렸기 때문에 아직도 이 명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 비석은 5세기 무렵 고구려 장수왕과 남진 정책과 당시 삼국의 관계, 세력 범위 등을 밝혀 주는 큰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적극적인 남진 정책으로 백제의 수도인 한성을 점령하였던 고구려의 세력 범위가 충주 지역에까지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에 빠지지 않고 등장할 정도로 매우 귀중한 유물이다.

 

 

 

▲ 충주 고구려비 뒷면

 

 

 

충주 고구려비의 정체는 1979년부터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사실 이 비석의 존재는 아주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는데, 이미 충주 고구려비가 세워져 있던 마을은 마을 입구에 이름 없는 커다란 돌이 서 있는 마을이라고 하여 대대로 입석 마을이라고 불렸던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 돌을 한때 대장간 집의 기둥으로 쓰기도 하였고, 때로는 마을을 지키는 수호석으로 여기기도 하였으며, 또는 그 앞에서 아들을 낳게 해 달라고 기원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1979년에 문화재 연구 모임인 예성동호회의 제보로 시작되어 단국대학교 학술조사단이 이 돌을 조사한 결과, 고구려의 비석임을 밝혀졌다. 무려 1500년 전에 세워진 고구려 비석이 세상에 그 정체를 드러낸 것이다.

 

▲ 충주 고구려비 측면

 

 

​▲ 전시관이 세워지기 전에 비각에 보관되었던 당시 모습

 

 

 

 

비석은 높이가 약 2미터, 너비가 0.5미터, 두께가 33센티미터로 만주에 있는 광개토대왕릉비에 비하여 크기는 작지만 매우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비석의 4면에 모두 글자가 있는데 마모된 부분이 많아 완벽한 내용을 알 수는 없지만 총 400자 정도의 글자가 새겨져 있고 당시 삼국의 상황에 대한 내용도 담고 있다. 비석의 건립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고구려 장수왕 때인 5세기 후반에 한강 하류의 여러 성을 차지한 후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1981년에 비석을 보호하는 전각을 세워 보관하다가, 2012년부터 충주 고구려비 전시관을 세워 그 안에 보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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