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화산성 남문 | 강화산성 내성의 남쪽 문이며, 조선 시대 숙종 37년(1711년)에 지어졌다. 앞쪽에는 ‘강화남문’, 뒤쪽에는 ‘안파루’라고 쓰인 현판이 걸려 있다.
강화산성은 인천광역시 강화군에 있는 고려 시대의 산성으로, 사적 제132호에 지정되어 있다.
강화도는 예로부터 군사적 요충지로 여겨졌다.
고려 시대인 1232년(고종 19년), 무신 정권의 실권을 쥐고 있던 최우(최충헌의 아들)는 몽골의 침입을 맞아 개경에 있던 도읍을 강화도로 옮겨 몽골에 끝까지 저항하고자 하였다. 육지에서는 천하무적이지만 수전(水戰)에 약한 몽골군에 대비하기 위해서이다. 이 전략은 큰 효과를 거두어 고려는 몽골과 강화를 맺고 다시 개경으로 도읍을 옮기기까지 무려 39년 동안이나 몽골에 항전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강화도는 1232년부터 1270년까지 고려의 도읍지였다.
▲ 강화산성 동문(망한루)
강화산성은 바로 이때 강화도에 만든 도성(都城)이다. 본래는 내성(內城)과 외성(外城)이 따로 있었지만 현재 남아 있는 것은 돌로 쌓아 만든 내성 부분이다. 외성은 강화도 해안선을 따라 몽골의 침입에 대비하여 길게 쌓았다.
그러나 1270년 몽골과 강화를 맺고 다시 개경으로 환도하게 되면서 몽골과의 강화 조건 중 하나로 강화산성은 헐리게 되었다.
조선 초기에 다시 성을 쌓았다가 병자호란 때에 파괴되었고, 1677년에 대대적인 개축을 하여 고려 시대의 내성 규모로 다시 쌓았다. 현재는 남문(안파루)과 북문(진송루), 서문(첨화루), 동문(망한루), 그리고 4개의 암문과 2개의 수문 등이 남아 있다.
▲ 강화산성 서문(첨화루)
▲ 연무당 옛터 | 강화산성 서문 근처에 연무당 터가 있는데, 연무당은 강화유수가 병사들을 훈련시키던 곳이다. 이곳에서 1876년 일본과 강화도 조약을 체결하였다. 현재는 연무당 옛터를 알리는 표지석만 세워져 있다.
▲ 강화산성 북문(진송루)
▲ 북문에 연결되어 있는 강화산성 성벽
강화산성 서문 근처에는 연무당 터가 있는데, 이곳에서 1876년 일본과 ‘강화도 조약’을 맺기도 하였다.
강화산성의 사대문은 강화종합터미널에서도 멀지 않으며, 강화군청을 중심으로 걸어서 2시간 이내에 충분히 다 돌아볼 수 있을 정도의 거리에 각각 떨어져 있다.
특히 강화군청 주변에는 성공회 강화성당, 용흥궁, 고려궁지 등의 사적과 문화유산이 모여 있어 함께 둘러보면 더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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