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폴 시냐크(1863~1935)
신인상주의(Néo-Impressionsme)란 19세기 말에 크게 유행했던 인상주의에서 벗어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기법을 사용한 그림이란 뜻에서 붙여진 말이다.
다른 포스팅에서 ‘점묘법의 화가’ 조르주 쇠라(1859~1891)를 소개한 적이 있는데 바로 이 쇠라가 신인상주의를 탄생시킨 화가이다. 쉽게 말하면 신인상주의 화가들은 점묘법을 사용한 화가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폴 시냐크(Paul Signac, 1863~1935)는 쇠라와 함께 신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이다. 그는 쇠라와 마찬가지로 점묘법을 사용했으며 ‘분할’이라는 개념을 회화에 적용하였다.
쇠라보다 4살 어린 그는 당시 미술의 중심지였던 프랑스 파리의 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점묘법을 탄생시킨 쇠라는 불과 32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는데 시냐크는 쇠라의 뒤를 이어 오랫동안 점묘법을 발전시키고 신인상주의를 체계적으로 이론화시킨 화가이다.
▲ 1883년 20살 때의 시냐크
미술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학창 시절에 ‘빛의 3원색’이나 ‘색의 3원색’이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빛의 3원색에서 두 가지 색이 겹치는 부분은 색의 3원색이 되고, 세 가지 색이 겹치는 부분은 흰색이 된다. 반대로 색의 3원색에서 둘씩 겹치는 부분은 빛의 3원색이 되고, 세 가지가 겹치는 부분은 검정색이 된다.
▲ 빛의 3원색(왼쪽)과 색의 3원색(오른쪽)
이런 간단한 원리로부터 점묘법이 탄생하였다.
색의 3원색이 혼합되면 검정색이 되듯이, 팔레트에 물감을 섞을수록 색은 점점 어둡고 불투명하게 된다. 화가들은 그림을 그릴 때 팔레트에 여러 가지 색의 물감을 섞어서 사물을 표현해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그림은 점차 어둡고 탁해지는 경향이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화가들은 이러한 문제점을 알고 있었다. 이런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실제로 색채학과 광학 이론을 그림에 적용해 점묘법을 탄생시킨 화가가 바로 조르주 쇠라였던 것이다.
색을 섞지 않고 마치 모자이크처럼 작은 점을 여러 개 찍듯이 캔버스 위에 붓을 찍으면 색을 섞지 않고도 우리의 눈은 ‘중간색’을 인지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서로 다른 색을 수없이 ‘찍어서’ 그리는 방법이 바로 점묘법이다.
‘신인상주의’라는 말은 인상주의 화가들의 전시회 때인 1886년에 조르주 쇠라가 그린 <그랑드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라는 작품을 본 미술 비평가 펠릭스 페네온이 인상주의와는 전혀 다른 획기적인 그림이란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 <펠릭스 페네온의 초상화> | 펠릭스 페네온은 ‘신인상주의’라는 표현을 처음으로 쓴 미술 비평가이다.
시냐크는 어릴 때 건축을 공부하였지만, 인상주의 화가인 클로드 모네(1840~1926)의 작품에 감명받아 인상주의 기법으로 그림을 그리며 화가로서의 길에 나섰다. 그러다가 1884년에 쇠라가 독립 미술가 전시회에 출품한 <아스니에르에서의 물놀이>라는 작품을 보고 나서 쇠라와 가까운 친구 사이가 되었다.
쇠라와 시냐크는 함께 색에 관해 연구하면서 서로의 작품에 대해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하여 두 사람은 점묘법과 색채 분할을 연구하며 함께 작품 활동을 계속하였다.
▲ <우산을 쓴 여인>
시냐크는 쇠라와 함께 ‘앙데팡당(독립 미술가 협회)’이라는 단체를 새롭게 만들어 전시회를 열기 시작했다. 국가의 지원을 받으며 매년 엄격한 심사를 통해 입선한 화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살롱’에 대항하여 앙데팡당은 사전 심사를 없애고 화가들이 자유롭게 작품을 그려 대중의 판단에 맡긴다는 원칙을 세웠다. 그 후 앙데팡당의 전시회는 수십 년 동안 이어지며 현대 미술이 탄생하는 중요한 토대를 마련하였다.
시냐크는 쇠라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점묘법과 색채 분할로 대표되는 신인상주의의 기법을 포기하지 않고 평생을 색채 이론에 매달리면서 작품 활동을 계속하였다. 그가 살았던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는 다양한 미술의 흐름이 교차하며 다다이즘과 추상화까지 등장하였던 시기였지만 시냐크는 다른 곳에 눈길을 돌리지 않고 오직 자신만의 기법을 발전시키는 데에만 몰두하였다.
▲ <골프주앙>
▲ <생트로페 항구>
그는 오랫동안 색채 이론을 연구하여 누구보다 미술, 특히 회화에 과학 이론을 접목시키려고 노력한 화가이기도 하다. 또한 논리적인 언어를 사용하며 글도 잘 썼는데, 1899년에 <들라크루아에서 신인상주의까지>라는 책을 남겨서 미술 비평가로서도 큰 인정을 받았으며, 신인상주의 이론을 완전히 체계화시켰다.
▲ <베네치아의 그랑카날>
▲ <마르세이유의 노트르담 드라가르드 대성당>
▲ <로테르담 항구>
점묘법과 신인상주의를 탄생시킨 것은 쇠라였지만 이를 발전시켜 세상에 널리 알린 사람은 시냐크였다. 시냐크가 연구한 미술 이론과 신인상주의 기법은 후대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특히 앙리 마티스와 야수파, 그리고 입체파가 탄생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시냐크는 쇠라와 함께 창립했던 앙데팡스의 회장을 오랫동안 역임하면서 야수파와 입체파의 젊고 재능 있는 화가들의 작품을 전시하여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데 공헌하기도 했다.
시냐크는 배를 타고 바다에 나아가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 중에는 유독 항구나 바닷가의 풍경을 담은 그림이 많이 남아 있다.
▲ <저녁의 앙티브 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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