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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유산

항일 운동의 상징,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구 서대문 형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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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 서대문 형무소 | 사적 제324호 

 

 

 

 

구 서대문 형무소는 대한제국 말기인 1908년 일제의 의해 경성감옥이란 이름으로 처음 지어졌다. 일제 강점기 동안 우리나라 사람들을 탄압한 대표적인 장소로,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애국지사들이 갇혀 고문받고 순국하였던 곳이다.

 

또한 광복 이후에는 독재 정권에 의해 많은 민주화 운동가들이 수감되어 고난을 겪기도 했다.

 

 

1908년의 모습

 

▲ 독립운동가 수형 기록표 |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었던 독립운동가들의 수형 기록표이다.

 

▲ 격벽장 | 수감자들이 운동할 때에 서로 이야기하는 것을 막고, 감시하기 좋도록 여러 개의 칸막이(격벽) 분리된 공간에 수감자들을 넣어 운동을 시켰던 곳이다. 위쪽 사진은 옛날 모습, 아래쪽 사진은 오늘날의 모습이다.

 

▲ 전시관 | 형무소 입구로 들어오면 바로 전시관이 있다. 1층과 2층, 지하에 각각 영상실과 각종 자료, 지하 고문실 등이 있다.

 

▲ 중앙사 | 옥사 전체를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한 건물이다.

 

▲ 공작사 | 1923년에 지어진 공장 건물로, 수감자들의 노동력을 착취하여 여러 물건을 만들었고 제2차 세계 대전 때에는 군수용품을 생산하였다.

 

 

 

 

위치는 서울시 서대문구 통일로 251이며,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과 이어진 독립문과 독립공원에 인접해 있다. 이곳은 조선 시대에는 한양 도성에서 북쪽인 의주로 가는 큰길인 의주로가 있던 곳으로, 중국 사신을 맞아들였던 영은문과 모화관이 자리 잡고 있었다.

 

 

1908년에 지어진 경성감옥은 1912년에 마포구 공덕동에 대규모 감옥이 새로 지어지자 서대문 감옥이란 이름으로 바뀌었다. 1923년에 서대문 형무소로 이름이 바뀌어 1945년 광복을 맞이하기까지 일제의 식민지 정책에 따라 주로 독립투사들이 투옥되었다.

 

 

 

▲ 취조실

 

▲ 벽관 고문 | 몸을 거의 움직일 수 없도록 좁은 공간 안에 사람을 가두어 앉을 수도, 움직일 수도 없도록 만든 고문 도구이다.

 

▲ 손톱 찌르기 고문 | 날카로운 꼬챙이로 손톱 밑을 찌르는 고문을 가하였다.

 

▲ 상자 고문 | 네모난 상자 안쪽 여러 곳에 날카로운 못을 박아 두어, 상자 안에 사람을 가두어 흔들어서 못에 찔리게 만든 잔인한 고문 도구이다.

 

▲ 사형장 |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된 여러 애국지사들이 순국하였던 곳이다.

 

▲ 통곡의 미루나무 | 사형장 바로 옆에 있으며,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애국지사들이 조국의 독립을 이루지 못하고 생을 마감해야 하는 원통함을 토해내며 통곡하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한센병사 | 한센병을 앓고 있는 수감자를 격리하여 수용하기 위한 옥사이다.

 

▲ 여옥사 | 여성들이 수감되었던 옥사이다.

 

​▲ 버선과 고무신 | 여옥사의 수감자들이 사용했던 버선과 고무신이다.

 

 

 

감옥이 지어진 초창기에는 주로 의병들이 수감되었고, 19193.1 운동 이후로는 민족 대표 33인을 비롯하여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수감되어 대한민국 독립운동의 역사적 현장으로서 그 가치가 높다.

 

 

광복 이후에는 서울 형무소, 서울 교도소, 서울 구치소 등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1987년에 서울 구치소가 경기도 의왕시로 옮겨지면서 사적 제324호로 지정되었다. 광복 이후에는 주로 독재 정권에 항거한 많은 민주화 운동가들이 수감되었다.

1998년에는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으로 개관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 용수 | 수감자를 이송할 때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씌웠던 도구이다.

 

​▲ 수감자들이 사용했던 고무신과 빨랫방망이

 

▲ 족쇄 | 수감자들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채웠던 도구

 

​▲ 추모비(민족의 혼 그릇) |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되어 순국하신 애국선열들을 위한 추모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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