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 김유신 묘 | 사적 제21호
경상북도 경주시 충효동에 있는 김유신 묘는 신라의 삼국 통일에 가장 큰 공을 세운 명장 김유신의 무덤이다.
사적 제21호에 지정된 김유신 묘는 경주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서쪽으로 다리 하나(서천교)를 건너면 나오는 송화산(松花山)이라는 작은 산줄기 동쪽의 얕은 구릉 위에 있다. 송화산이라는 이름 그대로 울창한 소나무 숲이 김유신 묘 주변을 감싸고 있다.
▲ 서울 남산에 있는 김유신 동상
김유신(595~673)은 신라 제29대 왕인 태종 무열왕(김춘추)과 함께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삼국을 통일하는 데 지대한 공을 세운 인물이다. 그는 신라에 투항한 금관가야의 왕족 출신이다. 그의 누이는 김춘추와 혼인하였는데, 삼국통일을 완성한 제30대 왕 문무왕이 바로 김유신의 누이(문명왕후)이다.
김유신은 특히 660년에 신라군의 총사령관으로서 당나라와의 연합군을 이끌어 백제를 멸망시켰으며, 668년에는 역시 신라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백제를 멸망시킬 때 황산벌 전투에서 백제의 명장 계백에 맞서 싸운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이와 같은 업적으로 문무왕 때에는 ‘태대각간(太大角干)’이라는 최고의 관작을 받았다.
▲ 경주 김유신 묘 | 봉분 뒤에서 본 모습
김유신 묘는 동그란 원형의 봉분으로 되어 있는데, 봉분의 지름만 해도 30미터에 이를 정도로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크다.
또한 봉분 둘레에는 십이지신상을 새긴 둘레돌이 있고 돌로 된 난간까지 갖추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왕릉의 형식을 갖춘 무덤이다.
▲ 둘레돌에 새겨진 십이지신상
이를 뒷받침해 주는 근거가 <삼국유사>에도 기록되어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김유신이 죽자 그를 ‘흥무대왕(興武大王)’으로 높여 부르고 왕릉의 예를 갖추어 무덤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삼국사기>에는 김유신이 죽자 문무왕이 예를 다하여 장례를 치르고 그 공덕을 기리는 비를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현재 그 비석은 남아 있지 않고 ‘신라태대각간 김유신 묘(新羅太大角干金庾信墓)’라고 새겨진 비석만 남아 있는데, 이 비석은 조선 시대인 1710년(숙종 36년)에 당시 경주부윤(慶州府尹)이었던 남지훈이 세운 것이다.
▲ 비석 | '신라태대각간김유신묘'라고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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