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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유산

조선 시대의 관아 건물, 부여동헌과 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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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여동헌(초연당)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96호

 

 

백제는 5세기 고구려 장수왕의 남진 정책으로 인해 한강 유역을 빼앗기고, 도읍인 한성을 떠나 웅진(지금의 공주), 사비(지금의 부여)로 도읍을 차례로 옮겼다.

 

백제의 마지막 수도인 사비성으로 여겨지는 부소산성 아래에는 부여 관북리 유적이 있는데, 이곳에는 백제의 왕궁이 있었고 조선 시대에는 부여현 관아가 있었다.

 

 

부여현 관아 터에는 부여현감의 공식 집무실인 동헌을 비롯하여, 살림집인 내아(內衙: 수령과 수령의 가족이 지내던 안채), 객사(客舍: 왕명을 받고 중앙에서 내려온 관리나 사신이 머무르는 곳), 도강영당(사당) 등이 남아 있다.

 

동헌 건물은 1869(고종 6)에 지었으며, 정면 5, 측면 2칸 규모이다. 중앙에는 초연당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 객사

 

 

객사는 왕명을 전하기 위해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가 머무는 곳이다. 평상시에는 왕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시고 예를 올리는 건물이기도 했다. 부여 객사 건물은 1869년에 동헌과 함께 지어졌다.

 

 

▲ 내아 | 내아를 '내동헌(內政務)'이라고도 부른다.

 

 

 

내아는 현감이 머무르는 처소로, 앞면 5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가운데에 대청이 있고, 양쪽에 1칸씩 온돌방이 있다.

 

 

▲ 도강영당(道江影堂)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16호

 

 

도강영당은 내아 옆에 있는 사당이다. 이 사당은 홍가신(1541~1615), 허목(1595~1682), 채제공(1720~1799) 세 분의 영정을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 동헌 뒤에 있는 백제공예문화관 | 건축가 김수근(1931~1986)의 작품으로, 한옥을 형상화하여 만들었으나 왜색이 짙다는 비판이 일기도 하였다. 현 국립부여박물관이 지어지기 전까지 부여박물관으로 사용되었다가 현재는 백제공예문화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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