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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유산

부여의 향교, 부여향교와 의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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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여향교 입구의 홍살문 | 부여향교는 조선 시대 부여에 세워진 지방 교육기관으로, 충청남도 기념물 제125호이다.

 

 

 

향교는 성균관과 더불어 고려 말기부터 조선 시대에 걸쳐 지방에 세워진 공립 교육기관으로, 공자와 유학의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거나 유학을 가르쳐 인재를 양성하던 곳이다. 향교는 관학(官學)으로서 지방 관청의 관할 아래에 있었고, 공자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문묘(대성전)와 동무, 서무, 그리고 명륜당과 동재, 서재 등 성균관과 거의 같은 구조로 지어졌다. 향교에서 학생(유생)들은 소학, 사서, 오경 등을 배웠는데, 현재도 전국 각지에 약 230개 이상의 향교에서 봄과 가을에 석전대제를 치르는 등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부여향교는 조선 초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설립 연대는 알 수 없다. 처음에는 부소산 서쪽 기슭에 있었지만 18세기에 현재의 위치인 정림사지 북쪽으로 옮겨졌으며, 여러 차례의 보수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 부여향교 외삼문

 

▲ 부여향교 명륜당

 

​▲ 부여향교 대성전

 

 

 

전체적으로 명륜당이 앞에 있고 대성전이 뒤에 있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건물 배치를 하고 있다. 남아 있는 건물로는 외삼문과 내삼문, 유생들의 공부방인 수선재(修善齋)와 강학 공간의 중심인 명륜당, 제사 공간의 중심인 대성전 등이 있다.

 

 

명륜당은 주위보다 높게 기단을 쌓은 후 세웠고, 명륜당 뒤로 높게 계단을 쌓아 내삼문이 있으며, 그 뒤로 대성전이 자리 잡고 있다.

▲ 의열사 | 백제의 삼충신을 비롯한 부여 출신의 여섯 충신을 모신 사당으로,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14호이다.​

 

 

부여향교에서 동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의열사라는 사당이 있는데, 이곳은 백제의 마지막을 지켰던 세 명의 충신 성충, 흥수, 계백과 고려 후기의 충신인 이존오(1341~1371)를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훗날 정택뢰와 황일호를 추가로 모셔 현재 여섯 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이 여섯 분은 모두 부여가 배출한 충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의열사는 조선 시대인 1575(선조 8)에 당시 부여 현감이었던 홍가신에 의해 처음 지어졌고, 그 후 여러 차례 새로 고쳐 지었다. 본래는 용정리의 망월산에 있었는데, 1971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사당은 정면 3, 측면 3칸 규모로, 지붕은 사람 인()자 모양의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 의열사 외삼문

 

▲ 의열사비

 

 

 

의열사 입구에는 '의열사비(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6)'라는 오래된 비석 하나가 세워져 있는데, 1723(경종 3)에 세워진 비석이다. 비석에는 의열사의 창건 연혁과 이곳에 모셔진 여섯 분 충신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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