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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유산

단종의 왕비 정순왕후의 무덤, 남양주 사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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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릉 |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에 있으며, 사적 제209호이다.

 

 

사릉(思陵)은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에 있는 조선의 왕릉으로,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 왕릉 40기 중 하나이다.

 

 

사릉에 모셔진 분은 비운의 어린 왕조선 제6대 임금 단종의 부인인 정순왕후(定順王后) 송씨이다.

참고로, 우리나라 역사에는 정순왕후라는 이름을 가진 분이 세 분 있다. 조선 제21대 영조의 비인 정순왕후도 있고, 고려 제24대 원종의 비인 정순왕후도 있다.

 

▲ 사릉의 능침(봉분) | 봉분의 규모는 다른 왕릉에 비해 작은 편이며, 병풍석과 난간석이 없고 문석인, 석마 등 석물 등도 간소하게 되어 있다.

 

 

단종의 비인 정순왕후 송씨(1440~1521)는 판돈녕부사를 지낸 송현수의 딸로, 1440(세종 22)에 태어났다. 그 후 제5대 문종이 승하하고 단종이 즉위하자 14세의 나이로 간택을 받아 이듬해 15세의 어린 나이에 단종의 왕비가 되었다.

이때는 이미 계유정난(1453)으로 단종의 숙부인 수양대군(훗날 세조)이 조정의 모든 권한을 손에 넣은 뒤였다. 따라서 임금인 단종과 왕비인 정순왕후는 이름뿐인 왕과 왕비나 다름없는 처지였다.

 

 

결국 단종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上王)이 되어 수강궁에 머무르게 되었다.

그런데 단종이 왕위에서 물러난 이듬해에 사육신을 중심으로 한 단종 복위 운동이 발각되는 사건이 터졌다.

단종은 상왕의 신분에서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등되어 강원도 영월로 유배되었다. 이때 정순왕후도 역시 부인으로 강등되어 궁궐에서 쫓겨났다.

 

▲ 비각 안의 비석 | '조선국 정순왕후 사릉'이라고 새겨져 있다.

 

 

 

남편과 떨어져 홀로 살게 된 정순왕후는 흥인지문(동대문) 근처에 있는 정업원에 머물며 평생을 살았다고 한다. 정업원은 도성 안에 있던 여승(비구니)이 모여 있던 절로, 오늘날 서울시 종로구 숭인동에 있는 청룡사이다.

 

단종은 1457(세조 3)에 강원도 영월에서 생을 마감하였고, 정순왕후는 홀로 수절하며 1521(중종 16)8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15세의 어린 나이에 왕비가 된 후 18세에 단종과 이별하여 64년을 홀로 살았던 셈이다.

후사가 없이 세상을 떠난 정순왕후의 무덤은 단종의 누이인 경혜공주가 출가한 해주 정씨의 가족 묘역에 안장되었다. 그곳이 바로 현재의 위치인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이다.

 

 

180년 후인 숙종 때(1698)에 이르러 단종의 신분이 왕으로 복원되었다. 따라서 정순왕후의 무덤도 왕릉의 지위를 회복하여 격식에 맞게 단장되었고 신위도 종묘에 모셔졌다. 사릉(思陵)이란 이름은 정순왕후가 평생 남편인 단종을 생각하며(생각할 사 ) 지냈다 하여 붙여졌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사릉에 있는 소나무들이 한결같이 동쪽을 향해 있는데 이것은 정순왕후가 남편인 단종의 무덤이 있는 강원도 영월(동쪽)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 사릉 재실 | 재실은 제관들이 제례를 준비하는 곳인데 평소에는 능참봉이 머물며 능역을 관리하였다. 재실에는 향을 보관하는 안향청, 제례 업무를 주관하는 전사청, 제기를 보관하는 제기고, 행랑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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