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주 강원감영 입구
▲ 원주 강원감영 전경
사적 제439호에 지정된 원주 강원감영은 원주시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이다.
감영(監營)이란 조선 시대에 8도를 관장하는 관찰사가 머물던 관청을 말한다. 쉽게 말해 관찰사는 오늘날로 치면 도지사에 해당하고, 감영은 도청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 시대에는 8도의 중심지에 각각 한 개씩 총 8개의 감영이 있었다. 경기도 감영은 서울에 있었고, 경상도는 상주, 전라도는 전주, 황해도는 해주, 평안도는 평양, 충청도는 충주, 강원도는 원주, 함경도는 함흥에 있었다. 나중에 경상감영은 상주에서 대구로, 충청감영은 충주에서 공주로, 함경감영은 함흥에서 영흥으로 옮겨지는 등 감영의 소재지가 자주 바뀌었고, 현대에 들어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오늘날 남아 있는 감영의 흔적은 거의 없다.
▲ 선화당(宣化堂)
▲ 선화당(宣化堂) | 강원감영의 중심 건물로서, 강원도 관찰사의 공식 집무실이다. 정면 7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 구조이다.
▲ 내아 | 관찰사의 집무 공간인 선화당 바로 옆에 있는 건물로, '내동헌’이라고도 부른다. 관찰사가 실제로 거주했던 살림집이다.
강원도 원주시 원일로 85(일산동)에 남아 있는 원주 강원감영은 강원도 관찰사의 거처이자 강원도 전체 행정의 중심이었다. 강원감영이 처음 설치된 것은 1395년(태조 4년)이므로, 조선 말기인 1895년 감영이 폐지될 때까지 무려 500년 동안 강원감영은 그 위치를 옮기지 않고 강원도의 26개 부, 목, 군, 현을 관할하였다. 따라서 강원감영이 있던 원주는 강원도의 중심 도시였다.
본래 강원감영에는 총 50여 개가 넘는 건물이 있었다고 하는데, 1592년 일어난 임진왜란 때에 모든 건물이 소실되었다가 1634년에 원주목사 이배원이 다시 짓기 시작하였고 여러 목사와 관찰사들이 계속하여 건설하였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선화당, 포정루, 청운당 등의 몇 개 건물만 남아 있다.
▲ 포정루(布政樓)의 옛 모습
▲ 포정루(布政樓) | 강원감영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으로, 2층 누각 구조이다. 포정(布政)이란 말은 중국 명나라의 지방관청인 포정사(布政司)에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
▲ 관찰사 및 목사 선정비 | 강원감영의 관찰사와 원주목의 목사들의 선정(백성들을 잘 다스림)을 칭송하기 위해 세운 비석으로 총 14기가 남아 있다.
▲ 중삼문 |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구조로, 강원감영의 입구인 포정루와 내삼문 사이에 있는 문이다. ‘관동관찰사영문(關東觀察使營門)’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 내삼문 | 포정루, 중삼문과 연결되어 관찰사의 집무실인 선화당으로 이어지는 길 중간에 있는 문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징청문(澄淸門)이라는 편액이 달려 있다.
▲ 행각(行閣) | 중심 건물을 보조하는 건물로, 현재 내부에 강원감영에 관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1895년 조선의 8도 제도가 23부로 개편되면서 강원감영은 그 기능을 상실하였으며 1907년 이후로는 원주군청으로 사용되었다. 2000년부터 강원도와 원주시가 강원감영 복원 사업을 시작하면서 현재 선화당, 포정루, 중삼문, 내삼문, 내아, 행각 등 일부 건물을 복원해 놓은 상태이다.
오늘날 조선 시대 감영의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사라졌고, 강원감영의 경우에는 건물터와 담장 터, 석축 등 관련 유물이 비교적 많이 남아 있어 매우 중요한 문화재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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