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양천고성지 | 사적 제372호
서울 지하철 9호선 양천향교역 근처에는 서울시 안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향교인 양천향교가 있다. 양천향교란 이름 때문에 행정구역상 서울시 양천구에 속해 있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 이곳은 서울시 강서구에 속해 있다.
조선 시대에는 현재 서울특별시의 서쪽, 그중에서도 한강 아래에 있는 강서구와 양천구 일대는 경기도 ‘양천현(陽川縣)’에 속했다. 현(縣)은 조선 시대 행정구역의 단위인 '부목군현(府牧郡縣)' 중 가장 아래에 속한다.
이 지역은 1963년에 서울시 영등포구에 편입되었고, 1988년에 강서구와 양천구로 분리되었다. 다시 말해 지금의 강서구와 양천구가 모두 조선 시대에는 양천현이었다.
▲ 양천향교 | 현재 서울에 남아 있는 유일한 향교로, 양천고성지가 있는 궁산 기슭에 있다. 조선 시대에는 이 부근에 양천현 관아가 있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이지만 지역의 중심지는 그 지역을 관할하는 시청, 군청, 구청 등 관청 주변에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조선 시대에도 양천현의 중심지는 현재 지하철 9호선 양천향교역 부근에 있던 양천현 관아였다. 오늘날 양천향교가 있는 자리가 바로 양천현 관아가 있던 곳이다.
양천현 관아의 우두머리는 현령(縣令)이었다. 그런데 역대 양천현령 중에는 아주 유명한 이가 있으니 바로 <인왕제색도>를 그린 겸재 정선(1676~1759)이다. 그는 1740년에 양천현령으로 임명되어 5년간 이 지역을 다스렸다. 정선은 이 기간 동안 양천현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화폭에 담아 여러 작품을 남겼다.
지금도 양천향교 바로 뒤에는 해발 고도 74미터의 궁산(宮山)이라는 야트막한 산이 있는데, 산의 북쪽으로 한강 줄기와 맞닿아 있어 정상에 오르면 탁 트인 강의 아름다운 경치가 한눈에 들어온다.
▲ 소악루 | 궁산의 정상부인 양천고성지에 있는 누각이다. 처음에는 조선 영조 때에 양천현 관아 뒷산인 이곳 궁산에 만든 것인데, 현재의 건물은 1994년에 다시 세운 것이다. 이 누각에 오르면 한강과 그 북쪽의 인왕산, 남산, 안산 등이 한눈에 보이며 경관이 매우 아름다웠다고 한다. 이곳 현령이었던 겸재 정선이 그린 <경교명승첩>이란 그림에 당시 경관이 자세히 나타나 있다.
사적 제372호에 지정되어 있는 ‘서울 양천고성지’는 바로 이 궁산의 정상부에 있던 산성의 터이다.
이곳은 조선 시대에 서해안을 거쳐 한강을 따라 한양 도성으로 향하는 배들이 들어오는 입구에 해당한다. 따라서 군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다.
한강을 사이에 두고 남쪽에는 이곳 양천고성이, 북쪽에는 행주산성이 있어서 배를 타고 한강을 따라 서쪽에서 한양 도성으로 쳐들어오는 외적을 감시하고 막기에 유리한 위치이다.
▲ 양천고성지에서 바라본 한강의 모습 | 한강 건너편의 행주산성이 보인다.
▲ 성황사 | 양천고성지에 있는 사당으로, 성황사 신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성곽은 궁산의 정상 부근에 펼쳐진 평지를 중심으로 둘레가 약 300미터로, 테뫼식 산성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현재 남아 있는 흔적은 많지 않다. 테뫼식 산성이란, 산 정상부에 띠를 두르듯이 축조된 산성을 말한다.
몇 차례의 조사를 통해 이곳에서 통일 신라 시대의 토기와 기와 조각이 다량으로 발견되었고, 흙으로 다져 쌓은 성벽의 기초가 되는 석축이 발견되었다. 이를 통해 이미 통일 신라 시대에 성곽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임진왜란 때에는 권율 장군이 행주산성에서 대승을 거두기 전에 이 성에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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